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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후서 3 장 | 베드로후서 3장 21748 좋은 평가 이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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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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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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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urchofjesuschrist.org

Date Published: 6/2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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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 3 | KRV 성경 | YouVersion – Bib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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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 베드로후서 3장 – 한국컴퓨터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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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 3 KLB – 주님이 다시 오심 – 사랑하는 – Bible Gateway

베드로후서 3. Korean Living Bible … 3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나는 여러분에게 두 번째 편지를 씁니다. … 3 여러분은 먼저 이것을 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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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02(목) \”베드로후서 3:1-18\”/ 작성: 이영란

본문 베드로후서 3장 1-18절 찬송가 179장 ‘주 예수의 강림이’ 베드로전서는 그리스도인들이 당시 주변의 이교도들로부터 적대와 멸시를 당하고 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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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7/1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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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앞날(베드로후서 3장 4절)대구동부교회 김동욱 목사님의 …

베드로후서 3장 1절: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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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 3장 18절 (베드로후서 3:18 / 벧후 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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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 3장 – 교사용]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하려고: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1) →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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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1/2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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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을 준비하는 5대 자세 (베드로후서 3장 8-13절) – 이한규 목사

베드로후서 3장 8-13절. (8절)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절) 주의 약속은 어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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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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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베드로 후서 3 장

  • Author: 공동체 성경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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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2. 15.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Tdw7ijfUBII

베드로후서 3

하나님의 날

1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2 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3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4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5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6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1)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15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2)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17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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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둘로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

2 곧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3 먼저 이것을 알찌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4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5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6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15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17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2016/06/02(목) \”베드로후서 3:1-18\”/ 작성: 이영란

본문 베드로후서 3장 1-18절

찬송가 179장 ‘주 예수의 강림이’

베드로전서는 그리스도인들이 당시 주변의 이교도들로부터 적대와 멸시를 당하고 있을 때 소망을 주기 위해 쓰여진 편지입니다. 베드로가 쓴 두 번째 편지인 베드로후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확신을 강조하기 위해 쓰여졌습니다. 재림에 대한 약속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들을 조롱하는 사람들이 나타나 성도들을 미혹하자 베드로는 선지자들의 예언의 말씀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상기시키며 주님의 재림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었습니다.

3절입니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말세는 마지막 날들이란 의미입니다. 주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시대를 가리킵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도 말세라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조롱하는 자들은 미래의 종말을 부인하는 거짓 교사들을 의미하는데 그들이 하는 조롱은 하나님을 경멸하고 모독하는 교만한 언사입니다. 그들은 4절에서 주님의 재림을 부정했지만 성경은 계속해서 주님의 다시 오심을 이야기해 왔습니다. 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셨고(마24:34), 주님께서 승천하실 때에는 천사들이 약속했습니다(행1:11). 또한 사도들도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확고하게 이야기했습니다(살전4:15, 벧전4:7).

그러나 미혹하는 거짓 교사들은 창조 이래로 세상의 모습과 자연 법칙은 변하지 않고 규칙적인 것처럼 또한 구약의 조상들도 수없이 잠들었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던 것처럼 세상은 계속 반복될 뿐이라며 주님의 재림은 없다고 단정 지었습니다(4절). 그러나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간곡하게 주님의 마음을 전합니다. 9절입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주님의 재림이 더딘 것은 거짓 교사들이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능력 없으심이 아니라 단지 오래 참으시는 긍휼 때문이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는 사랑 때문임을 강조합니다(15절). 하나님께서 진실로 원하시는 것은 온 인류의 회개입니다. 누구도 예외없이 모두가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기다리심 때문임을 거짓 교사들은 알 턱이 없었던 것입니다.

조롱하는 자들, 거짓 교사들의 주장처럼 주님께서 오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오실 것이지만 그 때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도둑이 언제 침입할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주님께서도 도둑같이 오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10절). 언제 주님께서 다시 오실지 알 수 없기에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그 날을 간절히 사모하라고 말씀합니다. 11-12a절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입니다. 거룩한 행실은 악으로부터 분리되어 하나님께 헌신된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악과 친밀하면서 하나님께 헌신할 수 없습니다. 또한 경건하다는 것은 ‘신앙심이 깊은’, ‘하나님을 경외함’ 이라는 의미입니다. 주님의 재림이 지연된다고 하여 재림 자체를 부정하거나 핑계의 근거로 삼을 것이 아니라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깊은 신앙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권합니다.

끝으로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고 권면합니다. ‘자라가라’는 말은 미완료형으로 쓰였습니다. 계속적으로 자라가야 함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주님을 영접하고 구원받은 것에 만족하여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와 그에 대한 지식 안에서 계속 성장하여 굳세게 서서 거짓 교사, 조롱하는 자들의 미혹에 빠지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성장해야 하듯이 그리스도인들도 성장해야 합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의 지식 안에서 자라갈 때, 광야에서 사단의 유혹을 말씀으로 이기시며 매 순간 성령 하나님과 동행하셨던 주님처럼 오늘도 성령님에 의지하여 걸을 때 어떤 유혹도 어떤 환난도 견디어 낼 수 있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세상은 교회를 향해,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조롱하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다시 오심을 믿는 우리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하나님의 시간을 인지하고 살아갑니다. 그 삶 속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이 채워지게 하옵시고, 오래 참으시고 기다리시는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 안에서 오늘도 자라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노아 때는 물로 심판이 임했다면 이후의 심판은 무엇으로 이루어진다고 말씀합니까?(7절)

2. 미래에 임할 불 심판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9절)

3. 오늘 하루의 삶 속에서 이루어져야 할 회개가 무엇인지 살펴보십시오.

4. 회개가 어렵게 느껴진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5.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는 말씀이 내 삶 속에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작성: 이영란)

세상의 앞날(베드로후서 3장 4절)대구동부교회 김동욱 목사님의 설교말씀 – 아침 해가 돋을 때(552장)

세상의 앞날(베드로후서 3장 4절)

대구동부교회 김동욱 목사님의 설교말씀

아침 해가 돋을 때(552장)

대구동부교회 김동욱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정리하였습니다.

2019년 3월 6일, 수요일, 수요예배

우리는 지난 몇 주 동안 베드로후서 2장 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베드로후서 3장 1에서 7절까지 말씀을 함께 나누겠는데요. 베드로후서 3장은요, 베드로가 이 서신을 기록한 이유와 우리의 세상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 1에서 7절까지 기록되어 있고, 또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주님의 강림을 소망하는 내용이 8에서 14절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권면의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까지 자라가도록 하는 권면의 말씀이 15에서 18절까지 말씀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저와 함께 1에서 7절까지 말씀 함께 같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베드로가 두 번째 서신을 기록한 이유

첫 번째는 베드로가 두 번째 서신을 기록한 이유가 1에서 2절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1절에 보니까,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베드로후서 3장 1절: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베드로후서 3장 2절: 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이 말씀을 보면 베드로가 두 번째 편지, 곧 베드로후서를 쓰는 이유는 이단의, 또 거짓된 선생들의 가르침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요, 육체적으로 타락한, 정욕대로 살도록 가르치는 이단이 있었고, 또 한 이단은 예수님의 강림을 부인하는 이단도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에서 비추어서 볼 때, 당시 이 서신을 받고 있던 소아시아 여러 흩어져 있던 성도들 가운데 진실한 마음을 상실하고, 사도들이 명한 것을 잊고 있던 자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또한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에서 살펴봤듯이 당시 교회에는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선생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의 유혹에 넘어가 스스로 멸망의 길로 가고 있던 자들도 또한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이런 그들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서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바르게 생각하게 하려는 것이며, 그들이 멸망의 길로 가지 않고, 생명의 길로 가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대다수가 자신들이 살아있는 동안에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은 얼마가지 않아서 곧 멸망할 것이라고 또한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온갖 고난과 핍박을 다 견디면서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그들은 귀한 믿음을 지켰습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자신의 믿음이 흔들릴 때마다 곧 주님이 오실 것이라며 서로 믿음을 격려했습니다. 그 때 그들의 인사가 바로 ‘마라나타’였는데, 이것의 뜻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첫 세대의 사람들이 다 죽고, 기다리던 주님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당장 주님이 오실 줄 알고 조급한 마음으로, 급한 마음으로 그들은 기다렸는데,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도 주님이 오시지 않으니까, 그들의 정신이 조금씩 해이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성도들의 마음속에 혹시 주님은 안 오시는 것 아닐까, 이런 의심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기다렸다는 듯이 거짓 선생들이 나타나서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하면서 온 세상은 처음 창조되었던 그대로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고 떠들며 믿는 자들의 예수님의 다시 오심의 소망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제가 오늘 예배드리러 오기 전에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저희 자녀들이 가지고 싶은 선물이 있었는데, 어떤 분이 선물을 사주셨어요. 택배 아저씨가 오기로 했어요. 분명히 택배 아저씨가 한 시간 뒤에 온다고 했는데, 오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계속해서 서두는 거예요. ‘아빠, 왜 안 와요? 아빠, 왜 초인종이 울리지 않아요? 아빠, 한 시간 지났는데 왜 오지 않아요?’ 하면서 계속해서 저를 닦달하는 거예요. 그래서 ‘아, 이거 너무 빨리 왔나, 집에? ‘ 그러면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마찬가지로 여러분, 그 당시의 성도들 마음도요, 다시 오신다고 했는데, 기다리라고 했는데, 왜 오시지 않았을까, 아마 그 당시의 성도들의 마음이 택배를 기다리는 우리 자녀들의 마음, 또 여러분들의 마음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베드로는요, 그들의 거짓 교훈을 경계하고,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주님의 강림을 기다리도록 하기 위해 지금 이 서신을 기록한 것입니다. 당시 교회에서는 교인들에게 미래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가르쳐 줘야만 했습니다. 즉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니까 더 이상 예수님을 기다리지 말고, 열심히 그냥 살아가라 이렇게 하든지, 아니면 주님이 오신다고 분명히 약속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약속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에 계속 긴장하면서 잘못된, 거짓된 교훈에 흔들리지 말고 끝까지 참고 인내하라 이런 가르침을 줘야만 했다는 것이죠.

초대교회 교인들은 주님이 오실 것을 기다리던 때로부터 지금 현재까지 무려 2,00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안 오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도 있고, 심지어는 오시지 않는 게 더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저는요, 어디 갈 때마다 휴게소를 들릅니다. 특별히 먼 거리를 갈 때는 꼭 가는 휴게소가 있습니다. 즉 고향집에 갈 때는 꼭 들르는 휴게소가 있는데요. 제가 휴게소에 들르는 이유는 멀기도 하지만 저희 아이들이 휴게소를 너무 좋아한다는 거예요. 왜 그러냐 하면요. 그곳에는 그들이 좋아하는 핫 바가 있구요. 또 음료수가 있고, 또 감자가 있고, 그리고 자신이 원하면, 동전만 넣으면, 언제든지 사탕과 이것 저것 간식거리를 주는 그런 것들이 있기 때문에 이 친구들은 꼭 휴게소를 들르자고 합니다. 그래서 휴게소에 들러서 음료수도 사주고, 오줌도 쉬우고, 또 이런 식으로 하면서 휴게소에 잠깐 쉬었다가 갑니다. 그런데 이번 연휴 때는 저희 막둥이가 인제 말 한참 하기 시작하는데, 이 녀석들이 먹을 것 다 먹고, 뽑을 것 다 뽑은 다음에 가지 않는 거예요. 왜 안 가냐, 빨리 가자, 얼른 가야 돼, 그랬더니 바닥에 누워서 뒹굴면서 절대 움직이지 않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휴게소가 좋다고 해도, 그곳에 파는 음식이 아무리 맛이 있다고 해도, 우리는 계속 그 곳에 머물 수 있을까요? 그 곳에 살 수 있을까요? 아니라는 것이죠. 우리는요 그곳을 빨리 떠나야 된다는 것이죠. 왜요? 우리에게는 목적지가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여행을 하거나 집에 갈 때는 분명한 목적지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잠시 쉬고 다시 길을 떠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옛날 중동 사람들은요, 더운 날씨에 먼 곳을 여행할 때, 물이 있는 곳을 만나면 텐트를 치고, 며칠 동안 쉬다가 갔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다 되어서 텐트를 걷어서 목적한 곳을 향해 꼭 반드시 길을 떠났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주장하는 게 바로 이겁니다. 오아시스에 죽치고 앉아서 그 곳에서 계속 살자라는 것이죠. 아까 제가 말씀했던 것처럼 저희 아이도 역시 그 곳이 너무 좋기 때문에 그냥 눌러 앉아 있자라는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요, 마치 휴게소와 같습니다. 영원한 처소가 아니라는 것이죠. 우리에게는 반드시 가야 할 본향, 집이 있다라는 거예요. 돌아가야 할 처소가 있다라는 거예요. 찾아가야 할 곳이 있다는 것이죠. 우리가 그것을 잃어버리고, 이 세상에 눌러만 앉아 있다면, 우리는 목적을 잃은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 마음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있는 말씀을 따라 우리는 믿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약속하고 있는 것을 믿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나는 잘 될 거야, 잘 될 거야, 이게 믿음이 아니라, 성경에서 약속하고 있는 것을 믿는 게 바로 믿음이라는 것이죠. 물론 이런 믿음은 우리의 이성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생각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성령이 임하여서 우리의 눈과 마음을 열어주어야 된다는 것이죠.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모든 하나님의 약속들이 다 믿어진다는 거예요. 창세기 1장과 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만으로만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데서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라” 하시니 그대로 다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요, 창조의 능력이 있어서 천지의 창조가 이루어졌다는 것이죠.

여러분, 하나님의 이런 창조의 능력은 구약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약에도 등장합니다. 바로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 이 오병이어의 사건은요, 4복음서 전부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목격하고, 경험하였던 예수님의 표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것을 통해서 자신의 신성을 드러내셨고, 자신이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셨습니다. 아무리 유명한 과학자가 뭐라고 말해도, 온 인류가 다 믿지 못한다고 하여도, 주님의 영이 임한 자에게는 천하가 없어지더라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변함이 없고, 틀림없이 그대로 성취된다라는 것을 우리는 앞으로도 믿어야 되고, 또한 그것을 믿고 살아가야 된다라는 것이죠. 비록 지금은 주님이 다시 오심이 언제인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구약에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신 것처럼, 신약 시대에 메시아가 오셨고, 예수님께서 강림하시면서 다시 오신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다시 오신다는 것을 우리는요 굳게 믿어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2.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자세

그렇다면 두 번째로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자세가 무엇일까요? 3절과 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베드로후서 3장 3절: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베드로후서 3장 4절: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여기에서 말세에는 어떤 자들이 나오는 것일까요? 3절에 보니까, 말세에는 조롱하는 자들이 나온다고 합니다.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은요, 성경 말씀을 조롱하면서 자기 멋대로 떠들어대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들은 성경대로 믿는 사람에 대해서 이 세상에 것들을 최대한 즐기고 누려라, 무엇 때문에 그렇게 온다고 하면서도 아직까지 오지 않는 주님을 기다리면서 그렇게 바보처럼 즐기지 않고, 누리지 않고 사느냐며 조롱하고 업신여긴다는 것이죠. 오늘 주님의 다시 오심과 심판 같은 이런 말씀을 세상의 믿지 않는 자들이 어찌 볼까요? 광신도들의 미친 소리쯤으로 여기지는 않을까요?

한 때 우리나라에 휴거를 믿는 자들이 어떤 특정한 시간에 휴거가 일어난다고 난리를 친 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다미선교회죠. 1992년 10월 28일 24시에 휴거가 일어난다고 믿고 기다렸습니다. 여러분은 그 날 어디에 계셨습니까? 저는 이 날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저는요, 태권도장에 있었어요. 태권도장에서 계속해서 그런 이야기만 하는 거예요. 후거가 온다, 당시에 저도 교회 다니고 있었어요. 교회 다니고 있었는데, 진짜 그럴 거라는 생각도 있었어요. 왜냐하면 그 당시 분위기가 그랬어요. 생방송 뉴스로도 나오기도 하고 막 그랬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어땠습니까? 이 날 그들은요, 흰옷을 입고 예배를 드렸지만, 세상은 멀쩡했고, 휴거는 불발이 되었죠. 결국 그 선교회 교주는요, 감옥에 들어가게 됐어요. 이 말을 철썩 같이 믿은 성도들은 허탈하게 귀가를 했습니다. 그 때 그 선교회에서는 몸이 가벼워야 하늘에 잘 올라갈 수 있다라고 해서 굶다가 죽은 사건도 있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여러분.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신다면,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지내야 될까요? 우리가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린다고 하면서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때, 무의미하게 시간을 허비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단적인 사람들 중에 너무나 열광적으로 주님의 재림을 사모한 나머지 거의 광신적으로 이 세상을 완전히 부정하고, 집단으로 공동체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주님은요, 반드시 오세요. 언젠가는 하나님이 인류 역사를 끝내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중요한 것은 그 시기와 그 때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 시기를 아는 사람이 있다면요, 이단입니다. 우리는 단지 주님의 재림이 있기 때문에 긴장하면서 주님의 뜻을 살피며, 살아가야 된다는 것이죠. 만약 주님의 재림이 없다면,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살아야 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은혜가 있고, 믿음이 있다면,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려야 할 겁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이 불살라 없어질 것을 또한 우리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성도란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기를 간절히 사모하며, 천국을 소망하며, 기다리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믿는다고 말하는 자들 마저 세상에 종말이 없는 것처럼 살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죠. 왜 그럴까요? 자기의 정욕 때문에, 그렇게 살기 때문에 그렇다라는 것이죠. 자기의 정욕이란 무엇입니까? 결국 땅에 속하는 것으로 눈에 보이는 것들만 바라보며 사는 것입니다. 그것들을 좋아하고 사모하면서 사는 자들에게는 세상이 불 타 없어진다는 말씀이 걸림돌이 되고, 믿지 않게 된다라는 것이죠.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종말이 없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죠. 그러나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으니, 직접적으로 종말이 없다고 말은 못하고, 실제 사는 모습은 종말이 없는 사람처럼 살아간다라는 것이죠. 이런 자들의 특징이 무엇일까요? 서로 종말에 관하여, 곧 심판에 관하여 언급하기를 기피하는 것입니다. 혹 언급하는 자들이 있으면, 조롱한다는 것이죠. 4절 다시 보니까,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에 있느냐 이렇다라는 것이죠.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종말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자들의 이론입니다. 세상은요 영원하다라는 것이죠. 없어지지 않는다라는 거예요. 이 땅은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거예요. 물론 성경에서 땅이 영원하다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전도사 1장 4절에 보니까,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구절을 가지고 ‘여호와의 증인’들이 이 땅이 영원하다라고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것은요, 말씀을 오해한 것이죠. 이 말씀은 허무한 인생에 비하여 땅이 영원한 것처럼 보인다는 거예요.

그런데 성경은 그 영원해 보이는 땅마저도 불살라 없어진다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한 부분만 가지고 자기들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일에 빠져서는 안 된다라는 것이죠. 세상의 정욕대로 살고 싶은 사람들은 주님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을요 믿지 않습니다. 세상이 멸망할 것도 믿지 않습니다. 그런 말씀을 믿고 사는 자들을 조롱합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돈을 많이 벌고, 편안하게 즐기고 살다가 죽는 것은요, 실패한 인생입니다. 그런 사람은 엉뚱한 짓만 실컷 하다가 인생을 다 낭비한다라는 것이죠.

예수님은 우리에게 도적같이 오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도적은요, 안 온다고 생각할 때, 반드시 옵니다. 여러분. 전혀 생각하지 못한 시간과 장소로 찾아온다라는 것이죠. 저는요, 저번 연휴 때, 고향 집에 갔다가 대구로 돌아오는 길에 저희 가정이 저희 부모님이 어디 가셔가지고 집단속을 하고, 문단속을 다 한 다음에 나왔어요. 그리고 대구에 거의 도착했을 때 쯤, 갑자기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집에 도둑이 들었다는 거예요. 도둑이 들어와서 집안을 온통 다 뒤지고. 저금통을 가지고 도망을 갔다는 것이죠. 저희 어머니는 처음에 ‘왜 이렇게 집 정리도 하지 않고 갔느냐, 뭐가 그리 급해서?’ 생각을 했는데, 아무리 둘러 봐도 이것은 애들이 한 게 아니라 이거는 누가 와가지고 다 뒤진 거라는 생각이 든다는 거예요. 분명히 문단속을 철저히 하고 왔는데, 제 아내도 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순간 제 아내가 부엌에 있는 작은 창문이 있었는데, ‘설마 이곳으로 도둑이 들어오겠어?’ 하고 문을 잠그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어떻습니까? 설마가 사람을 잡았어요. 도둑이 들어왔어요. 무심히 넘어간 작은 창문을 통해 도둑이 들어왔구요. 그 창문을 통해 저금통을 가지고 달아났어요. 여러분, 우리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곳에 이런 일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강림은요, 안 온다고 생각할 때, 반드시 온다라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늘 깨어있어야 되고, 세상에 빠져버리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언제라도 주님이 오실 수 있다고 긴장하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3. 말씀의 능력

세 번째로 말씀의 능력이 5에서 7절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하면 실패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신앙을 가질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는 방법밖에 없다라는 것이죠. 5절에 보니까,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이세서 나와 물로 성립 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라고 했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5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 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은 하늘과 땅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것을 의도적으로 잊어버리라고 말합니다. 창세기에 보면요,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하시고 땅이 조성되는 것이 물에서 나온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물과 뭍을 분류하여 바다와 땅으로 구별하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씀으로 천지가 창조된 것을 잊어버려라고 하는 사람들이 바로 주님의 강림이 없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온 세상을요,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세상을 지탱하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면, 어떤 경우에도 실패하지 않는다라는 것이죠. 6절에 보니까,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베드로후서 3장 6절: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노아의 홍수를 말하는데요, 노아의 홍수 때 사람들이 물로 심판을 받은 것은 노아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요, 노아를 외면한 거예요. 그들은 노아를 조롱하였습니다. 세상을 물로 심판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은요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홍수가 나서 저희들을 다 멸할 때까지 깨닫지 못하고, 사고, 팔고, 먹고, 마시고, 자기들 마음대로 다 했다는 것이죠. 그러한 일들이 오직 그들의 삶의 목표라는 것이죠.그 때 물의 넘침으로 모든 사람이 멸망을 당했습니다. 여러분, 말씀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요, 그래서 항상 이 말씀을요 믿어야 된다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요, 믿을려고 하는데, 믿겨지지 않을 때도 많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내 정욕대로 살고 싶을 때가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여러분, 내 정욕대로 살고 싶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는 게 아닙니다. 내가 어떻게 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말씀하신 거 지키신다는 것이죠. 천지가 말씀대로 창조되고, 말씀대로 또한 심판을 받는다는 거예요. 이것은 만물이 다 주에게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가게 하는 원리라는 것이죠. 그러므로 믿는 자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다는 것을 믿고 사는 자들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이러한 모든 성경의 말씀을 잊어버리기 위하여 주의 강림도 없다, 세상의 심판도 없다, 이 세상은 처음 지어질 때부터 원래 그대로 있다, 자기들끼리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들의 마음에 정욕에 따라 살고 싶어서 애써 피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들이 세상에 끝이 없다고 하고, 주님의 강림이 없다고 한들, 주의 약속이 취소되거나 파기되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우리는 노아의 홍수 심판 때, 노아 가족 외에는 다 멸망당했다는 사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진다는 것이죠. 노아의 홍수 때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땅을 붙들고 땅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에게 물이 땅 속에 들어가 버리게 만들어서 그들이 붙잡고 의지하던 땅을 심판하신 것이죠.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았기 때문에 홍수에서도 살았고, 에녹 같은 또한 사람은요 하늘로 올려지는 축복도 받았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은요, 이 세상의 미래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미래, 앞날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결국은 심판 받고 불살라진다라는 것이죠. 이세상은 마지막 순간에 모든 것이 다 불타게 되었다는 것이죠. 이 불탈 세상만 믿고 세상에 열심히 투자한 사람들은요, 아무 것도 건지지 못한다는 거예요.

제가 알고 있는 한 부부가 있습니다. 집은 많이 그렇게 부유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직장이 안정적이었어요. 힘들게 살지는 않았어요. 자녀 셋도 아주 건강하게, 훌륭하게 잘, 남부럽지 않게 키웠습니다. 그런데 이 부부도요, 교회를 열심히 다녔습니다. 나중에 이 부부가 자녀들을 다 결혼 보내고 나서 두 분만 남아서 큰 집이 필요하지 않지만, 그래도 명절에 자녀들과 손자들이 오면 집이 커야겠다 생각을 하고 섬기는 교회 근처에 2층으로 된 아주 멋진 집을, 나무로 된 집을 근사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집을 짓고 얼마 되지 않아서 바람이 많이 불던 어느 날, 보일러실에서 불씨가 번졌다고 합니다. 화목보일러를 땠다고 해요. 다행히 집안에는 사람이 없었대요. 하지만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었기 때문에 불길은 계속해서 번져나갔습니다. 119에 신고를 했어요. 그런데 길이 막혀 소방차가 오지 못했어요. 도착했어요. 소방차가. 호스에서 물을, 불을 끄려고 호스를 틀었더니 물이 나오지 않는 거예요. 어이가 없죠. 순식간에 2층집이 전부 다 불타버렸습니다. 집안에 사람이 없어서 인명 피해는 없었어요. 하지만, 귀금속이 있어서 나중에 불씨가 전부 사라지고, 재만 남은 집터에서 금붙이 몇 개만 겨우 찾았다고 합니다. 처음에 이 부부는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평생 열심히 정직하게 살았고, 없는 돈 모아서 2층 집을 지었는데, 재산이 이거 하나밖에 없는데, 어떻데 순식간에 이렇게 불타고 재만 남을 수 있을까? 이런 허망한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불이 나고 며칠 뒤에 이 분은 학교에서 일했기 때문에 학교에 관사가 있어서 그 관사에서 당분간 지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부의 소식을 듣고 주변에서, 또 소방서에서 위로금과 위문품이 전달되었고, 자녀들이 돈을 모아서 다시 불난 집터에 집을 지을 계획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중에 이 분이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내 자랑이 무엇이었을까? 예수님이었을까? 하나님이었을까? 나의 직분이었을까?’ 이 분은 장로님이셨거든요. 그 분의 자랑은요, 2층으로 만든 집이었어요. 그리고 잘 키운 세 자녀였다는 것입니다. 그 분은 회개했고, 나중에 작은 집으로 다시 지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2층 집을 짓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녀들을 남부럽지 않게 키우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하나님보다, 말씀보다 우선하지 말라는 것이죠. 하나님보다 우선하는 것은요, 전부 우상이라는 것이죠. 장사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했는데, 망하거나 불타버리면,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다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이 세상만 생각하고 열심히 세상에만 투자한 사람들은요, 마지막 순간에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 자신도 영원한 불에 던져지게 될 거라는 것입니다.

결국 영원히 남는 것은요, 불을 통과한 믿음이라는 것이죠. 고난을 통과해서 정금과 같이 된 믿음은요, 어떠한 불길에도 남게 된다라는 거예요. 7절에 보니까,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베드로후서 3장 7절: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7절에서 그 동일한 말씀이란 노아의 홍수 때, 세상을 멸망시킨 그 말씀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주님은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에 보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그 동일하신 분이 말씀하신 것도 다 동일한 말씀이라는 것이죠. 천지를 창조하신 말씀도 동일한 말씀이고, 노아의 홍수 심판을 이루신 말씀도 동일한 말씀이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계신 것도 동일한 말씀이고, 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다시 살아난 것도 동일한 말씀이고,

부활 승천하시고 성령을 보내신 것도 동일한 말씀이고, 예수님이 영광 중에 다시 오셔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이 세상을 불로 심판할 것도 동일한 말씀이 된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란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그 약속하신 바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신실하게 이루어내시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어디에 기초를 두어야 될까요? 영원토록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 위에 두어야 된다라는 것이죠. 우리의 지식이나 우리의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세워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기초하지 않은 신앙은 다 헛된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이 아직 보존되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7절에 보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자신의 정욕 따라, 세상의 욕심을 따라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재림하시면, 다시 오시면,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이 세상은 추수 마당이 된다는 것이죠. 곧 알곡은 모아서 창고에 들이고, 가라지는 꺼지지 않는 불에 집어넣으신다는 것이죠. 오늘 우리가 바라보고, 우리가 보고 있고, 바라고 있고, 소망하는 세상의 것들은요, 불씨 하나와 바람만 있다면, 전부 불에 타버리고, 소멸하게 됩니다.

최후의 순간에 남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불같은 고난을 통과한 믿음의 사람들의 삶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비록 세상을 벗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영혼은요, 저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 게신 그곳은요, 눈물이 없는 곳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곳에 소망을 두고 이 땅을 살아가야 된다라는 것이죠.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이를 때까지 이 발걸음을, 이 믿음의 발걸음을 여러분, 멈추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어떠한 시련이 올지라도 두려워 마시고 천지가 무너질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한 사실이라 믿으며 우리 주님과 늘 항상 동행하는 복된 삶을 사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우리의 지식이나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는 신앙을 가지기 원합니다.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우리의 삶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온전히 말씀에 기초하여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대하며

기도하고 기다리는 삶을 살도록 우리의 삶을 항상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자료출처: 대구동부교회 김동욱 목사님의 설교말씀, 2019년 3월 6일, 수요일, 수요예배>

대구동부교회 홈페이지

http://dongbu.org/sub02/sub02_1.php

아침 해가 돋을 때(552장)

아침 해가 돋을 때(552장)

아침 해가 돋을 때 만물 신선하여라

나도 세상 지낼 때 햇빛 되게 하소서

주여 나를 도우사 세월 허송 않고서

어둔 세상 지낼 때 햇빛 되게 하소서

새로 오는 광음을 보람있게 보내고

주의 일을 행할 때 햇빛 되게 하소서

주여 나를 도우사 세월 허송 않고서

어둔 세상 지낼 때 햇빛 되게 하소서

한 번 가면 안 오는 빠른 광음 지날 때

귀한 시간 바쳐서 햇빛 되게 하소서

주여 나를 도우사 세월 허송 않고서

어둔 세상 지낼 때 햇빛 되게 하소서

밤낮 주를 위하여 몸과 맘을 드리고

주의 사랑 나타내 햇빛 되게 하소서

주여 나를 도우사 세월 허송 않고서

어둔 세상 지낼 때 햇빛 되게 하소서 아멘.

성도의 삶 / 베드로후서 3장 18절 / 오늘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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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 3장 18절 (베드로후서 3:18 / 벧후 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참된 신앙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매일매일 삶 속에서 주님을 깊이 알아가고 그분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느끼고 맛보고 경험하는 것이며 그분의 임재와 은총 속에 푹 잠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님으로만 행복해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신앙의 의식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신자는 많지만, 주님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그분을 그리워하고 사모하며 사랑에 빠져 사는 신자들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영생입니다.(요 17:3)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알고, 주님의 마음을 느끼고, 주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 때, 우리는 내 마음을 주께 드리고 또 더 드리고 싶고 주님을 더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주님을 깊이 사랑하지 못할까요?

그것은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깊이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알지 못하기에 신뢰할 수 없고, 신뢰하지 못하기에 나의 모든 삶을 맡길 수 없고, 내 삶을 맡기지 못하기에 주님을 경험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알고 주님의 임재를 느끼고 경험하면 할수록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알고 경험한 만큼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주님의 임재 속에서 주님을 알고 맛보고 느끼고 주님을 사랑하는 깊은 교제가 있을 때, 세상에서 이것보다 더 소중하고 귀한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 그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이요, 기쁨이며, 즐거움이요,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을 알면 알수록 너무 소중하고 존귀하시기에 주님을 더 깊이 알고 싶고, 그분께 더 많이 소유되고 싶고, 그분을 더 얻기 위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배설물같이 버린다고 말합니다.

빌 3:7~8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우리가 어떤 사람을 알면 알수록 그 사람을 신뢰하고 사랑하듯이,

주님을 알면 알수록 우리가 주님을 신뢰하고 의지하고 내 생명을 다해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을 알면 알수록 주님을 갈망하고 사모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주님은 너무 존귀하고 존귀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가장 높고 깊고 아름다우시고 놀라우신 주님!!!

성도의 삶은 매일매일 주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일이며, 그 주님을 알면 알수록 우리의 삶은 더 풍성해지고 하늘의 기쁨으로 가득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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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규의 온새기&월새기

베드로후서 3장 8-13절

(8절)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절)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절)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절)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절)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절)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종말을 준비하는 5대 자세 (베드로후서 3장 8-13절)

(알림) 온새기 월요일말씀과 홈페이지 주일설교의 차이

매주 월요일은 전날의 주일설교를 일부 발췌해서 온새기(온라인 새벽기도)로 보내는 날입니다.

오늘은 어제 주일설교의 약 60%를 발췌해서 보냅니다.

주일설교 100% 원문을 보기를 원하면 본 홈페이지 ‘주일설교’ 란에서 보시면 됩니다

기독교를 관통하는 대 진리가 있습니다. 바로 “심은 대로 거둔다.”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은 선행에 대해 보상하시고 악행에 대해 보응하십니다. 그러나 보상과 보응 문제에서 항상 하나님의 타이밍에 대한 열린 시야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선행을 바로 보상하거나 악행을 바로 보응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결국 보상의 지연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만큼 보응의 지연도 있기 때문입니다. 잘못할 때마다 즉각 벼락을 내리면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그러므로 시간문제는 하나님의 뜻에 맡겨야 합니다.보상이 늦어지는 이유는 ‘참된 성도를 찾으려는 하나님의 정의 때문’이고 보응이 늦어지는 이유는 ‘회개 기회를 주시려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보응이 늦어지는 것에는 감사하고 보상이 늦어지는 것에는 여유를 가지십시오. 어떤 분은 큰 구원의 은혜에 비해 한참 작은 선행을 하고서 바로 조바심을 냅니다. “왜 보상이 없지? 왜 남편이 변하지 않지? 왜 이렇게 헌신하는데 길이 안 열리지?” 그 질문에 하나님이 이렇게 답하고 싶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죄를 지을 때도 벌을 당장 내릴까?”보응의 지연이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라면 결국 보상의 지연도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입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밭 심은 데 팥 납니다. 분량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둡니다. 그런 단순한 진리를 외면하기에 세상이 시끄럽게 되는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원리를 아는 사람은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또한 사랑을 원하기에 먼저 사랑하고 믿음을 원하기에 먼저 믿어줍니다.심은 대로 거두는 이치 안에서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면 됩니다. 그 원리를 외면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타이밍에 대한 인식 차이’와 더불어 ‘대상에 대한 인식 차이’ 때문이기도 합니다. 즉 갑에게 잘못하면 갑이 아닌 을로부터 더 큰 보응을 받을 때가 많고 갑을 도와주면 갑이 아닌 을로부터 도움을 더 큰 받을 때가 훨씬 많습니다.제가 어려운 분들이나 선교사님들을 위해 작은 도움을 펼치고 나서 비전 동지로부터 더 큰 도움을 받는 체험을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결국 자기가 생각하는 모습대로 자기가 생각하는 시간에 자기가 생각하는 사람으로부터 보상이나 보응이 없다고 해서 보상이나 보응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의 열매는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오래 전에 자신이 알게 모르게 심은 것을 거둔 것입니다. 그래서 심은 대로 거두는 원리를 알면 보상이 늦다고 불평하지도 않고 보응이 늦다고 방종하지도 않습니다.선행을 하고 금방 보상을 바라면 오히려 죄에 대해 당장 벌을 받습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복이 늦어지는 것이 낫습니다. 보상과 보응의 지연을 통해 하나님의 숨은 사랑을 읽어낼 줄 알아야 합니다. 죄 공장인 자신이 벌을 받지 않고 지금 그런대로 편안하게 살고 있다면 보상이 늦어지는 것도 감사하십시오. 그처럼 심은 대로 거두는 진리를 깊이 인식하고 열심히 심는 삶이 종말의 때를 준비하는데 가장 필요한 삶입니다.하나님은 오래 참고 기다리시지만 영원히 참고 기다리시지는 않습니다. 때가 되면 예수님의 재림의 날이 도둑 같이 갑자기 임하고 그때는 하늘이 떠나갈 정도로 큰 소리가 있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질 정도로 온 땅이 불천지가 될 것입니다(10절). 그처럼 무서운 심판이 동반되는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면서 성도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본문 8절 말씀을 보십시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당시 거짓 선지자들은 주님의 재림이 지연되는 것을 가지고 갖가지 미혹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 개념과 인간의 시간 개념은 다르고 하나님의 때와 사람의 때도 다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시간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성도도 시간이 너무 얽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시간에 얽매이는 삶은 미혹의 통로입니다.언제나 주님의 재림 시기를 정하며 미혹하는 이단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왜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재림 시기를 정하는지 그 동기를 잘 파악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거짓 신령함으로 영혼을 약화시키고 미혹해서 돈을 털고 자신의 영적인 노예로 만들려는 나쁜 동기가 그 밑에 깔려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축복의 때와 기한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그 문제는 온전히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요즘 가끔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 동안 우리 교회를 지켜 오신 귀한 어르신 권사님들이 요새 기력이 점차 약해지고 있기에 하루라도 빨리 비전을 멋지게 이루는 모습을 보여드려서 큰 기쁨을 드리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그래도 조바심을 내지 말고 하나님의 때를 넉넉한 믿음으로 기다리며 현재 의미 있는 일을 만들어가면 됩니다. 그러면 비전이 이뤄지는 멋진 모습을 볼 때까지 권사님들의 건강도 지켜주실 줄 믿습니다.출애굽 당시 애굽에서 가나안까지는 40일이면 충분히 가는 거리였지만 그 365배인 40년이 걸렸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시간낭비입니까? 지금도 순종하며 기다리지 못해서 며칠이면 해결될 일을 몇 년 걸리며 더 늦어질 때도 많습니다. 보상을 바라고 조바심을 내면 보상이 더 없습니다. 반면에 보상에 대한 생각이 없이 하나님의 뜻에 헌신하면 어느새 보상의 때가 성큼 다가옵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늦는 것이 결국은 빠른 것입니다.아브라함은 75세의 나이에 믿음의 길을 출발했지만 마침내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너무 늦었다고 하지 마십시오. 본문에서 베드로가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고 한 것은 짧은 시간으로도 엄청난 일을 이룰 수 있다는 뜻입니다. 지금부터 남은 생애를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열심히 헌신하면 하루가 천년 같은 삶을 살 수 있고 남들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하나님 앞에 계수되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수도 있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시간과 때에 대해 항상 열린 시각을 가지십시오.본문 9절 말씀을 보십시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당시 거짓 선지자들은 주님의 재림이 없다고 미혹했을 뿐 아니라 주님의 재림 및 약속 성취가 늦어지는 것에 대해서도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약속 성취가 늦어지는 것은 주님의 약속이 잘못된 것이나 주님이 능력이 없는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주님이 오래 참으시는 증거라는 것입니다.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에 대해 성도는 ‘오래 기다림’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주님의 재림이 늦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이 오래 참으십니까? 심판의 끔찍함을 잘 아시는 하나님이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결국 주님의 재림이 늦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태만과 거짓의 표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의 표시입니다.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창 5:22). 왜 므두셀라를 낳은 후 그런 변화가 생겼을까요? ‘므두셀라’란 이름은 “내가 죽으면 쏟아진다.”란 뜻입니다. 즉 므두셀라란 이름은 그가 죽으면 홍수 심판이 있다는 깊은 의미가 담긴 이름입니다. 아마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고 이름을 지을 무렵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네 아들이 죽으면 홍수 심판이 주어진다.”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 이름을 므두셀라로 짓고 늘 종말과 심판을 생각하며 살았기에 평생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실제로 므두셀라가 969세에 죽자 바로 다음 해에 노아의 홍수가 있었습니다. 므두셀라는 성경에 기록된 가장 장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오래 산 것은 당시 사람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려고 오랫동안 심판을 늦춘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지금도 세상은 당장 심판 받기에 마땅하지만 하나님은 계속 회개기회를 주시고 심판을 늦추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판의 늦어짐에 대해 나태해지지 말고 거기서 하나님의 사랑을 읽어내야 합니다.어느 날, 한 목사님이 결혼 주례를 위해 예식장에 갔는데 행사 진행요원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신부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어요. 토요일에 바쁜 목사님을 이렇게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저희도 목사님의 시간을 귀하게 여겨 이런 시간 낭비가 없도록 해야 함을 잘 알지만 신부화장이 덜 끝났다고 하는데 어떡하지요?” 그 젊은 행사요원의 배려하는 말과 태도가 너무 기특해서 목사님이 언짢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그때 편안한 마음으로 앉아있는데 성령님이 감동을 주셨습니다. “종아! 신부화장 덜 끝나서 도착하지 못하는 것을 깊이 생각해봐라. 네 신랑 되신 그리스도도 속히 재림하고 싶지만 이 땅의 신부들이 아직 화장이 덜 끝나서 심판을 연기하고 기다리는 것이란다.” 그처럼 주님은 당장 오실 수 있지만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림의 지연을 통해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읽고 기다림을 축복으로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본문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베드로는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가 마땅히 취해야 할 첫째 자세로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을 갖추라고 합니다. 거룩함과 경건함을 갖추라는 말은 행위 하나하나를 따지며 수도사나 바리새인처럼 살라는 말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주님의 신부라는 의식을 가지고 자기를 단장하며 살라는 말입니다.신랑은 대개 예쁜 신부를 원합니다. 신부는 화장품을 30가지 이상 씁니다. 그렇게 화장에 돈도 많이 쓰고 시간도 많이 들여서 요새 신부들은 많이 예뻐졌습니다. 화장이 없는 자연스러운 얼굴이 좋다는 사람도 있지만 자연스러운 것이 관리도 없이 맘대로 내버려두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화장이 가장이나 변장 수준이 되면 안 되지만 자신을 예쁘고 단정하게 만들려는 노력은 힘써 해야 합니다. 그것은 상대에 대한 존중이자 예의입니다.성도도 힘써서 영적인 화장을 해야 합니다. 율법의 거울을 보고 마음과 태도를 단장하고 성령의 기름과 즐거운 헌신으로 영혼을 윤기 나고 예쁘게 만들어서 최상의 신부단장을 해야 합니다. 성경은 신부단장을 위한 영적인 지침서와 같고 교회는 영적인 미장원과 같고 목사는 영적인 미용사와 같습니다. 특히 주일 예배 때마다 은혜가 넘치는 말씀과 감사가 넘치는 찬송과 기도로 매주 아름다운 영혼의 단장을 이뤄내야 합니다.미장원을 자주 드나들면 얼굴이 예뻐지듯이 교회에 자주 오면 영혼이 예뻐집니다. 그처럼 말씀의 꿀을 먹고 찬양과 기도와 봉사와 교제를 통해 영혼을 아름답게 만들어서 주님이 오실 때 모두 예쁜 신부들로 나타나야 합니다. 처녀 때는 뭇 남성들의 이목을 끌려고 화장하지만 결혼하면 한 남성의 애정을 얻으려고 화장합니다. 사실 화장은 자기를 위해 하는 것 이전에 남을 위해 하는 것이고 신랑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한 남자의 사랑을 얻는 것이 뭇 남자의 시선을 받는 것보다 중요합니다. 뭇 남자가 다 선망해도 사랑하는 한 남자가 싫다면 그때부터 삶이 무너집니다. 단장의 제일 목적은 신랑의 마음을 얻는데 있습니다. 그처럼 성도는 세상적인 힘과 권세와 능력과 인기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이 기뻐하시는 신부의 꿈을 품고 주님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자신을 잘 단장해야 합니다.본문 12절 전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사탄이 거짓 선지자를 통해 시한부 종말론을 내세우는 것은 두려움과 급박성을 심어서 순진한 성도의 마음과 돈을 훔치고 그들은 영적인 노예로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사탄의 치밀한 고도의 전략적인 목적은 ‘성도의 믿음 약화’에 있습니다. 즉 거짓 예언자가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했다가 틀리면 실망해서 믿음을 버리거나 종말신앙이 현저히 약화됨을 알기에 자꾸만 틀린 시한부 종말론을 유포하는 것입니다.1980년대 어느 날, A 목사가 1988년 8월 15일에 예수님이 오신다고 했습니다. 그때 한 교인이 아쉬워하며 말했습니다. “오시려면 진작 오시지. 어렵게 아파트 한 채 겨우 마련하니까 이제 오신다니. 그 집에 살지도 못하고 가겠네.” 그렇게 아쉬워하면서 교인들이 괴나리봇짐을 싸들고 뒷산으로 올라갈 때 같이 갔습니다. 그런데 예언한 날 낮 12시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고 했는데 12시가 넘고 낮 한시가 되어도 안 오니까 교인들이 물었습니다. “목사님! 왜 12시에 오신다는 주님이 1시가 되어도 안 옵니까?”A 목사가 말했습니다. “이상한데. 분명히 오실 텐데. 연락이 잘못 되었나? 다시 기도하고 올게요.” 그리고 기도 굴에 갔다 와서 말했습니다. “여러분! 하늘나라에 갑자기 비상이 걸려서 재림을 무기한 연기하신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속빈 교인들이 그냥 “아멘!”하고 뒷산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런 거짓을 그냥 눈감아주고 잘 책임을 묻지 않으니까 거짓 예언과 거짓 치유를 내세우는 미혹이 지금도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좋은 교회를 만나고 이단을 만나지 않는 것은 신앙생활에서 최고의 축복입니다.실제로 1992년 시한부 종말론을 비롯한 그런 유사한 종말예언들이 다 틀리면서 한국 성도들의 종말신앙이 얼마나 약해졌습니까? 한번 그런 경험을 겪으면 영혼의 트라우마가 생겨 믿음도 약해지고 헌신도 약해집니다. 또한 그런 교회에 몸담았던 사람들은 다른 정상적인 교회에 가면 메시지를 밋밋하게 여기고 잘 적응을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시한부 종말론은 처음부터 귀를 기울이지 말아야 하고 또한 침착하고 냉철하고 담대하고 바르게 믿음생활을 하면서도 간절한 재림신앙이 퇴색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바른 재림신앙은 매우 중요합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역사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상상을 초월한 극적인 변화가 이뤄집니다. 예수님의 초림으로 역사가 주전(BC)인 기원전과 주후(AD)인 기원후로 나뉘었습니다. 예수님의 초림은 과거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이었지만 예수님의 재림은 앞으로 있을 가장 큰 사건이 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미래의 역사는 재림하실 예수님 전과 재림하실 예수님 후로 갈리면서 또 다시 놀라운 대 변혁의 역사가 지구상에 생길 것입니다.또한 그런 대 변혁의 역사가 각 개인의 삶에서도 나타납니다. 즉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님이 마음이 임하시면 자신의 삶에도 획기적인 주전과 주후의 변화가 나타날 것입니다. 결국 인생에서 가장 큰 사건은 예수님을 만난 사건이고 가장 큰 일은 예수님을 꼭 붙들고 사는 일입니다. 그 동안 예수님을 형식적으로 붙잡았다가 진심으로 붙잡는 변화만 있어도 그의 삶에 멋진 작품 인생을 향한 최대의 인생 반전의 계기가 나타날 것입니다.본문 12절 하반부 말씀과 13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주님이 재림하시는 심판의 날이 되면 사방이 불천지가 될 것입니다. 무섭고 두려운 장면이지만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성도에게는 의가 넘치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약속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고 주님 만날 날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삶처럼 행복한 삶은 없습니다.한때 잉꼬처럼 잘 살던 부부가 있었습니다. 아내는 저녁마다 정성껏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남편이 전화도 없이 밤늦게 들어오면서 자꾸 바깥으로 돌았습니다. 결국 남편을 기다리는 삶에 지쳐서 결혼 10년 만에 합의이혼하고 혼자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녁마다 마음이 허전했고 꼭 누군가 올 것 같고 자기도 모르게 뭔가를 기다리는 자신을 발견하며 이런 넋두리를 했습니다. “그래도 기다릴 사람이 있을 때가 좋았구나!”기다릴 사람이 있고 기다릴 것이 있다는 것은 중요한 행복의 조건입니다. 로또를 사면 사는 순간부터 설렌다고 합니다. 그 기다림의 대상이 좋은 것이면 행복감을 커지고 더 나아가 사랑하는 배우자나 주님이라면 그 행복감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성도는 주님을 기다리면서 앞으로 다가올 찬란한 미래의 일부를 현재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고난과 심판이 불신자에게는 힘들고 무서운 재앙이지만 진실한 성도에게는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되면서 조만간 큰 기쁨의 날이 펼쳐질 것입니다.이제 예수님을 만날 희망을 늘 품고 사십시오. 현재 모습이 부족해도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만은 늘 기억하며 사십시오.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악한 사람도 예수님의 보혈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면 눈물을 흘립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면 자기 약점과 힘든 환경 때문에 결코 절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약할 때 주어짐을 믿기 때문입니다. 결국 약한 것이 딱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굳고 딱딱한 것이 딱한 것입니다.사도 바울은 자신이 받은 은혜가 너무 커서 교만하지 않도록 주어진 육체의 가시가 떠나게 해라고 주님께 세 번 간구했습니다(고후 12장). 그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아! 네 은혜가 족하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이 자신에게 계속 머물러 있도록 자신의 약점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약해질 때가 강해질 때입니다.이제 예수님을 꼭 붙잡고 종말심판의 때가 작은 왕관을 받는 즉위식 때가 되게 하십시오. 그때까지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며 사십시오. 흔히 힘이 정의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힘과 숫자는 잠시만 정의인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힘과 숫자는 정의가 아닙니다. 힘과 숫자가 정의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조만간 그들 개념에 의한 진짜 정의의 손길이 다가옵니다. 바로 죽음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힘은 사실상 죽음입니다. 죽음보다 더 큰 힘이 어디에 있습니까? 죽음을 이겨낸 사람은 역사상 예수님 한 분밖에 없었습니다.하나님은 죽음이란 강력한 힘과 숫자의 제동장치를 발명하시고 힘과 숫자를 숭상하는 사람에게는 여지없이 그 제동장치를 빨리 작동시킵니다. 그 죽음의 힘에는 누구도 당할 재간이 없습니다. 결국 힘과 숫자를 정의로 여기면 진짜 정의로운 죽음의 손길이 늘 대기한 상태가 됩니다. 반면에 사랑을 정의로 여기면 영생의 기운이 일부나마 현실에서도 나타나면서 행복과 기쁨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결국 사랑이 최고의 힘과 정의입니다.나폴레옹은 죽을 때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창칼로 한 치의 땅도 얻지 못했지만 예수님은 창칼도 없이 세계를 정복했으니 그분이야말로 위대한 승리자이다.” 사랑이 진짜 정의입니다. 밑지는 장사가 남는 장사이고 지는 장사가 이기는 장사입니다.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시는 밑지는 장사를 했지만 결국 가장 남는 영적인 장사로 만드셨습니다. 그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 누구보다 나눔에 앞장서는 인물들이 되십시오.요새 돌아가는 세상을 보면 종말의 때가 가까워진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도 너무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랑으로 자신을 단장하며 주님 맞을 준비만 잘하면 됩니다. 주님의 뜻을 따라 열심히 나누십시오. 나누는 길이 얻는 길입니다. 나누면 나눔 받는 사람이 풍성해집니다. 신기하게도 나눠주는 사람의 마음은 더 풍성해집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도 풍성해지고 결국 천국 보상도 풍성해질 것입니다. 항상 복음을 비롯해서 좋은 것을 많이 나눔으로 마지막 때를 잘 예비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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