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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나오코 | 상실의 시대 와타나베와 나오코의 산책 코스 118 개의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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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긴급 사태가 해제되고 약 두 달여만에 전철을 타고서 도쿄 시내로 나왔습니다. 어디를 가볼까 하다가 상실의 시대에 주인공인 와타나베와 나오코가 산책을 하던 코스를 걸어봤습니다. 요쓰야역에서 내려 둑방길을 따라 걷는 코스로 화창한 날씨에 기분 좋게 바람이 불어 주어 산책하기 좋은 날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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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소설) – 나무위키:대문

이 광고는 워낙 유명했기에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이 유명해진 계기 중 … 와타나베의 말에 따르면 예전의 나오코는 늘 화려한 옷차림에 많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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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10/1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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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무라카미 하루키_나오코 자살 원인 규명하기

상실의 시대/무라카미 하루키_나오코 자살 원인 규명하기 … 유명한 소설인것은 알겠는데, 쌩뚱맞은 나오코의 죽음에 ‘둔기로 뒷통수를 맞은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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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9/2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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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번역본 제목 : 상실의 시대) –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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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runch.co.kr

Date Published: 10/2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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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추천] 상실의 시대 등장인물 소개/감상평 – microsoftst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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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7/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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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xyzorba.co.kr

Date Published: 4/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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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원제:노르웨이의 숲) 줄거리와 해설

나오코는 고베시절 주인공의 절친한 친구였던 키즈키의 여자친구였습니다. 그러나 키즈키는 어느날 자동차 배기가스를 마시고 자살하게 되고 주인공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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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문학의 새로운 경지를 연 장편 소설 <상실의 시대>는 일본에서 6 … 마음의 병을 앓는 나오코의 실종 6. 요양원에서 만난 나오코와 레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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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 와타나베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이 이야기에서 주요 인물은 나오코, 미도리, 레이코, 나가사와 이 정도로 흘러간다. 와타나베는 친구 기즈키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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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jamjamzo.tistory.com

Date Published: 2/1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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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play.google.com

Date Published: 10/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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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와타나베와 나오코의 산책 코스
상실의 시대 와타나베와 나오코의 산책 코스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상실의 시대 나오코

  • Author: 도쿄산책
  • Views: 조회수 40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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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0. 6. 7.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WQNSoTIPXQk

상실의 시대/무라카미 하루키_나오코 자살 원인 규명하기

​유명한 소설인것은 알겠는데, 쌩뚱맞은 나오코의 죽음에 ‘둔기로 뒷통수를 맞은듯한’

예상치 못한 멍때림을 느낀 소설이다.

소설은 독자가 반을 만드는 거제?

나는 책을 1.7독 하면서 뭔가를 느꼈다. 나오코의 자살이 그냥 정신병에 의한 자살이 아니라

다른 것이 뭔가가 있다.

그리고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와타나베를 설정하므로써 뭔가 굉장히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예를 들어,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관점이 ‘옥희’이기때문에 엄마와 아저씨의 애정관계를 정확히 캐치해내지 못하는 것처럼 <노르웨이의 숲>의 관점이 ‘와타나베’이기때문에 ‘나오코’에 대해서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 굉장히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1인칭 주인공 시점인데 본인의 감정 이외에는 진짜 전혀 노관심으로 여겨질 정도로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쉽사리 알기가 어렵다.

(이런 것은 특히 미도리가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나서 알아봐주기를 바랐던 장면 등에서 알 수 있다.)​

난 이번 도서에서 ‘나오코의 자살 원인’이 ‘와타나베’에게 근거함을 이야기해보고 싶다. ​

​나오코의 자살에 대한 원인은 무엇인가?

가설1. 자살이며 자신의 병에 대한 암울함으로 인한 비관에 의함

가설2. 자살이며 와타나베와의 관계에 대한 불안 및 비관에 의함

가설3. 타살(?)

나오코의 자살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는 이유는 ‘와타나베(나)’의 입장인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서술되었기때문에 무엇이 정확한 사인인지를 알기가 어렵다. 기존의 입장에서는 가설1이 가장 강력하다. 나오코는 가족력을 포함한 정신병력을 가지고 있었고 사망 직전에는 그 상황이 더욱 심각해져서 요양원에서도 지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새로 옮긴 병원에 있다가 레이코씨를 만나러 요양원으로 돌아올 때만 하더라도 나오코의 상황은 상당히 호전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요양원에 돌아와서 레이코씨와의 하루를 같이 보낸 뒤, 산에 올라가 자살을 한다. 여기서 의문점이 드는 것은 요양원에 돌아올 때만 하더라도 레이코씨와 대화하거나 놀 때, 별다른 문제가 없어보였다는 점이다. 물론 잠들기 직전에 레이코 씨에게 나오코가 자신과 와타나베와의 첫 성관계에 대해서 묘사하는 장면이 나오고 우울감이 빠졌다는 것도 어떤 힌트로 보이게 된다.

나는 나오코가 단순히 자신의 병에 의해서 삶을 유지할 이유가 없어 자살한 것이 아니라 가설2나 가설3에 의하여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제안을 하고자 한다.

가설2. 나오코는 와타나베와의 관계에 대한 불안 및 비관에 의해 자살을 하였다.

위 가설을 뒷받침하는 주장을 아래와 같이 제시한다.

1. 나오코는 와타나베를 사랑하였는가?

2. 나오코는 와타나베와 사랑을 하고 싶었는가?

3. 나오코는 자신의 정신적 문제가 와타나베와의 관계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우려하였는가?

4. 나오코는 와타나베의 행복을 자신의 행복보다 더 우선시 하였는가?

나는 나오코가 와타나베를 사랑하였고, 그와 사랑의 관계를 가지고 싶어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나오코는 와타나베도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아 둘의 관계가 진척이 생길 수 있었음을 알았지만, 그 관계가 실현될 경우에 나오코 자신에 의해서 관계에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하였고, 그 결과 와타나베를 떠났다. 와타나베를 떠나있는 동안 나오코는 자신의 상태가 호전되어 와타나베와 잘 지내고 싶었으나 자신이 그 정도로 정신이 건강하지 못했고 심지어 와타나베에게 새로운 여자(미도리)가 생겼음을 알고 자신과 미도리 사이에서 갈등하는 와타나베를 위하여 자살하였다고 주장한다.

용어를 정의하자면

사랑 은 10~20대 초반에 나타날 수 있는 이성에 대한 강력한 끌림을 의미합니다. ‘정’이라거나 ‘존중’ 등의 가치가 아닌 ‘독점욕’이라거나 ‘소유욕’ 등 불타는 청춘들에게 나타날 수 있는 감정을 의미하며 소설에서는 나오코가 와타나베에 대한 감정때문에 헛된 망상으로 인해 둘의 관계가 망쳐질 미래까지 걱정하는 그러한 모든 미친 생각들을 포함한다.

나오코가 기즈키를 사랑했다고 하는 표현은 ‘이성간의 사랑’을 의미하는 위의 정의가 아니라 ‘정’에 가깝다고 보여진다.

1. 나오코는 와타나베를 사랑하였습니다.

나오코는 자살한 기즈키와 오랜 시간을 친구로 지냈다. 둘은 연인이 되었지만 강력한 끌림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오랜 시간을 함께 했기때문에 사귀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말합니다. 둘이 사랑의 관계가 아니었다는 것은 둘 간에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성관계’가 불가능했다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둘은 끊임없이 시도했으나 나오코는 젖지 않아서 관계를 가질 수가 없었다. 이 뜻은 나오코가 성적으로 기즈키에게 흥분할 수 없었음을 의미한다.

기즈키가 죽은 이후에 대학에 진학하고 둘은 도쿄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거의 매주 와타나베는 나오코를 만났고, 나오코는 와타나베를 만나고 싶어한다. 와타나베가 룸메이트인 ‘돌격대’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에도 아주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였고, 산책도 좋아한다. 이렇게 1년을 함께 지내고 같은 기숙사의 남학우들이 와타나베가 연애한다고 놀릴 때에도 모두가 알고 있지만 눈치없는 와타나베만 둘 간의 관계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얼덜결에) 나오코에게 거리를 둔다(p.54).

심지어 가을이 지나 겨울이 되고 나오코가 와타나베의 코트 호주머니에 순을 넣거나 팔에 매달리기도 했지만 그것은 ‘나’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나오코의 마음(?)을 몰라준다(p.53).

​결국 (참다못한) 나오코는 자신의 20세 생일날에 와타나베를 자신의 방으로 부른다. 20세라는 의미는 여러가지가 될 수 있지만 동양권에서는 성인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책에서도 ’19세에서 드디어 20세가 되었다. 어른이 되었다.’라는 표현이 몇 번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나오코는 성인이 된 기념으로(?) 와타나베를 자신의 방으로 초대한 것이다. 요양원에서의 고백에서도(p.182) 나오코는 ‘당신과 만났을 때 이미 나는 준비가 되어있었어요. 품에 안겨서, 알몽이 되어, 애무를 받고, 당신을 받아들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생각을 하기는 처음이에요.’라고 말한다. 분명 나오코에게는 (와타나베만 못보는) 명약관화한 빅 빅쳐가 있었다 . 와타나베가 기숙사에 살기때문에 뻔히 어느 시간내에 들어가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11시까지 수다를 떨고, 와타나베는 ‘나오코가 이렇게 말을 많이 한 것을 본 적이 없어 그냥 놔두었다’라고 할만큼 나오코는 와타나베를 밤까지 붙잡아놓기 위해 열성을 다해 (자신의 적성과도 맞지 않는) 폭풍수다를 무려 4시간이나 떤다. 와타나베가 ‘그만, 그만 돌아갈게. 마지막 전차 시간이 되었으니까’라고 말했지만 나오코는 들은 척도 하지 않습니다. 사실 그 말을 듣고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이야기를 계속합니다. 그리고는 와타나베가 돌아가지 않을 것 같은 태도를 가지게 된 이후에 나오코는 와타나베가 돌아가지 않을 것임을 알고 나오코는 말을 멈추고 ‘입술을 약간 벌린 채로, 내 눈을 멍하니 바라보았'(p.70)는데 와타나베는 그녀가 ‘작동 도중에 전원이 빠진 기계처럼 보 인다며, 그녀의 눈이 불투명한 막을 뒤집어 씌워놓은 듯이 희미했다’고 표현합니다 . 약간 야한 표정(?)을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나오코의 표정을 ‘맹해보인다’는 표현으로 설명하는 와타나베를 보면 정말 울음이 나오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어보입니다. 결국 나오코는 (절대 넘어오지 않는 남자에 대한) 수치심을 이기지 못하고 갑자기 울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의도한 바대로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나중에 요양원에서의 대화도 마찬가지이다.

와타나베가 “나오코는 나에게서 어딘가 평범하지 않은 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말인가?”란 질문에

“당연하잖아요. 당신은 그런 것도 모르세요? 그렇지 않다면 왜 내가 당신과 잤겠어요? 술에 취해서 누구라도 좋으니 함께 자자는 생각에서 당신과 잤다고 생각하나요?”라고 말한다.

2. 나오코는 와타나베와 사랑을 하고 싶었는가?

위에서 나온 것처럼 나오코는 지속적으로 와타나베를 만났고, 관계도 가지게 되었다. 와타나베를 사랑하고 싶었는가에 대해서는 나중에 요양원에 가서 나타나는 대화를 통해서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요양원에 갔다는 것은 자신의 병을 치료하고자하는 의지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나오코는 세상으로 통하는 창이 와타나베였다고 할 정도로 사회에서 친한사람은 와타나베뿐이었다. 요양원에서 치료를 받는 과정에 있었던 것도, 요양원에서 상황이 호전된 이후에 와타나베를 초대하여 놀았던 것도 모두 와타나베와 잘 지내며 자신을 잊게 하고 싶지 않았기때문에 언젠가 잘 될 둘의 관계를 기대하는 과정이었다.

3. 나오코는 자신의 정신적 문제가 와타나베와의 관계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우려하였는가?

나오코는 와타나베와 관계를 가진 이후 와타나베와 사귈 수 있음을 알았다. 나오코가 떠난 뒤에도 와타나베는 나오코에게 편지를 써서(p.73) ‘우리는 서로를 너무나도 모르다. 하지만 만약 나오코가 나에게 시간을 준다면, 나는 최선을 다할 것이고, 우리는 훨씬 더 서로를 잘 알게 될 것이다.’라고 쓴다. 이쯤이면 나오코도 와타나베와 잘 지낼 수도 있음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불안했던 나오코는 자신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것이 아님에도 자신이 원인이 되는 것처럼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친언니도 자살을 하였고, 사귀던 기즈키도 죽었기때문에 불행의 원인이 자신이거나 혹은 자신도 그렇게 불행해지게 될 수 있음을 느꼈다. 나오코는 몇 개월 후에 편지로 ‘당신이 저에게 상처를 준 것은 아닙니다. 저에게 상처를 준 것은 제 자신입니다.’라고 말하며 와타나베를 만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후의 편지에서는 ‘저는 불완전한 인간입니다. 저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불완전한 인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당신에게 미움을 받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이 미워하거나 하면 저는 정말로 산산조각이 날 겁니다. 저는 당신처럼 자신의 껍질 속으로 숨어 들어가 사태가 수습되기를 기다리지는 못하거든요. … 그래서 때때로 당신을 몹시 부러워하고, 당신에게 필요 이상으로 폐를 끼치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라고 편지한다. 여기서도 나타나는 것은 나오코가 ‘와타나베에게 미움받을 수 있음’에 대해서 굉장히 두려워하고 있으며 만일 그렇게 될 경우에 (와타나베와는 달리) 사태를 수습할 수 있는 멘탈이 없다고 고백한다.

나오코는 ‘이따금 이런 생각이 듭니다. 만일 당신과 제가 아주 당연하고 평범한 상황에서 만나, 서로에게 호의를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면, 도대 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제가 정상이고, 당신도 정상이고, 기즈키 씨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하지만 이 만일은 너무나도 큽니다. 적어도 저는 공정 하고 정직 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저로서는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당신에게 전하고 싶은 것입니다.’라고 편지에 쓴다. 나오코는 지금 자신이 정상이 아니기 때문에 와타나베와 정상적인 연인의 관계를 가질 수 없음을 이해하고 있고, 만일 현재의 불완전한 상태에서 와타나베와 사귀게 되었을 경우 자신에게 발생할 문제를 우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와타나베는 이러한 나오코의 걱정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그러니 위로도 없을테고…)

나오코가 말하는 ‘공정’과 ‘정직’이라는 말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와타나베는 나오코 같은 젊은 여성이 그런 말을 왜 쓰지?라고 생각하면 또 한번 나오코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여기서 나오코는 자신의 불완전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정직’하게 밝히지 않고 와타나베와 사귀게 된다면 (정보의 불균형에 의하여? 장차 손해?를 입게 될) 와타나베에게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 한 것이다. ​

소설의 초반에서 나오코는 와타나베에게 이런 말을 한다.

“지금 이렇게 당신 곁에 꼭 붙어 있으면, 전 조금도 무섭지 않아요. 어떠한 죄악이나 어둠도 저를 유혹하려 들지 못하니까요.”

“그러면 이야기는 간단하군. 언제까지고 이렇게 하고 있으면 되잖아?”

“고마워요.”

“천만에.”

“당신이 그렇게 말해주시니 저는 아주 기뻐요. 정말이에요. 하지만 그건 불가능해요. …

누군가가 누군가를 쉬지 않고 영원히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에요. … 당신이 출장 간 사이에 도대체 누가 저를 지켜주죠? 저는 죽을 때까지 당신에게 꼭 붙어다녀야 하나요? 그런 건 대등 하지가 않아요. 그리고 당신은 언젠가 저에게 싫증이 날 거예요. 내 인생은 도대체 뭐야,

이 여자를 지키는 것뿐인가? 하고. 저는 그런건 싫어요. 그래서는 제가 지니고 있는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간주할 수 없어요.”

둘 간의 대화는 요양원에서 산책을 하면서 나누던 대화이다. 여기서도 유사하게 ‘대등’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한 사람만에 많은 희생을 많이 해서 (사랑을 끊임없이 받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주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상황 ​을 대등하지 않다, 즉, 공정하지 않은 것으로 보았다.

나오코는 자신과 와타나베의 미래를 그렸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 미래에 자신의 정신적 불안정 때문에 남자가 자신에게 싫증을 내며 떠나갈 상황을 선걱정하였고, 그 결과 와타나베와 연인이 될 수 없음을 생각하였다.

나오코는 기즈키가 죽어버린 뒤에 다른 사람들을 어떤 식으로 대하면 좋을지를 모르게 되었고 남을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도 혼란을 겪었다(p.182).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 지는 잘 모르지만 ‘와타나베에게 느껴지는 분명한 느낌’을 주체하지 못했고 그때의 기분을 떠올려 다시 나오코는 울었다.

4. 나오코는 와타나베의 행복을 자신의 행복보다 더 우선시 하였는가?

나오코는 와타나베가 행복하기를 바랐습니다. 와타나베는 나오코를 좋아했지만 동시에 대학에서 만난 미도리에게 급격하게 끌리고 있었다. 편지를 통해서 자신의 근황을 전할 때에도 와타나베는 (아무렇지도 않게) 미도리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나오코는 와타나베에게 보내는 편지에 ‘혹시 미도리씨가 와타나베씨를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요?’ 라고 묻는 질문에 레이코씨가 ‘당연하지’라는 반응을 보였다는 내용을 편지에 써보낸다. 그 이후에 편지에서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눈치없는) 와타나베는 편지에서 미도리를 지속적으로 언급했을 가능성이 있고, 나오코는 와타나베에게 어떤 여자가 있음을 알았을 것이다.

와타나베가 나오코와 미도리와의 관계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았을 가능성이 높다.

와타나베는 생명력을 가지고 활동적이며 소같은 아이를 낳아주겠다고 하는 미도리에게 나오코와는 다른 끌림을 경험하게 된다. 그런 이유로 레이코씨에게 ‘나오코를 좋아하지만 미도리와 사귀어도 될까?’라는 우편을 보낸다. 그 편지는 6월 12일 경으로 추정된다. 그 편지에 대한 답장이 닷새 후인 6월 17일에 오기 때문이다. 레이코씨의 답장에서도 ‘그런 내용은 미도리가 알지 않는 편이 좋겠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항상 시간을 같이 보내는 레이코씨는 ‘와타나베와 나오코’의 관계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8월에 나오코가 자살하기 전, 레이코씨를 방문하여 요양원에 간다. 나중에 나온 레이코씨의 말에 의하면 나오코가 죽기 전에도 레이코씨와 와타나베는 계속해서 서신을 주고 받았다고 나온다. 나오코가 요양원에 갔을 때, 당연히 레이코씨의 방인 자신의 방에 들어갔을 것이고 와타나베와 레이코씨가 주고받은 편지의 존재에 대해서 알았을 것이다. 우선 레이코씨와 와타나베가 사귈 것이라고 오해했지는 않았겠지만(?) 둘간의 편지를 몰래 보고 나서 자신의 존재가 와타나베의 새로운 사랑(미도리)을 이루는 데에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알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한 이유로 (낮에는 그렇게 밝았던 아이가 밤이 되자 엄청나게 우울해졌으며, 물론 그 사이의 시간에 와타나베가 레이코에게 보낸 편지를 읽었기때문에) 자신의 존재를 사라지게 하여 와타나베가 더이상 고민하지 않도록 해주었을 수 있다. 이러한 주장4가 황당하지 않은 것은 와타나베가 고전작품인 ‘위대한 게츠비’를 꾸준히 읽으며 나오코에게 ‘게츠비’와 같은 사랑을 보여주었던 것처럼 나오코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감명깊게 읽어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때문에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슬퍼하여 자살하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암튼 둘 다 정상은 아닙니다만…

결론.

하쓰미가 사귀었던 나가자와는 바람둥이입니다.

하쓰미가 “당신은 내가 당신을 이해해주지 않아도 아무 상관없다는 이야기인가요? 또 그걸 원하지도 않는다는 건가요?”

“아직 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모양인데, 인간이 누군가를 이해하는 건 그럴 수 있는 시기가 왔기 때문이지, 그 누군가가 상대방의 이해를 요구했기 때문이 아니야 .”

“제가 누군가에게 저를 이해해주길 바라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란 말인가요? 예를 들자면 당신에게?”

“정상적인 인간은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지. 하지만 내 시스템은 다른 사람들의 시스템과 아주 다르거든.”

상대에 대한 이해에 대한 내용에 대해서 나오는 장면이다. 와타나베는 나오코를 이해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있는 시기 혹은 인간이 아니었기때문에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나오코는 영영 이해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자살을 선택한다. 나오코는 끊임없이 와타나베의 헌신적인 사랑을 바랐다. 그러나 와타나베는 그런 상황을 인지하지 조차 못하고 그런 행동을 해주지도 못한다. (그래도 한다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레이코씨가 자신이 정신적 문제가 있었을 때 만났던 전남편이 끝까지 잘 돌보아주어서 결혼을 하였던 것도 남자의 적극성이 큰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여자학생과의 문제가 발생해서 이사를 가자고 하였을 때 남편이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여 정신병이 도져버린 것도 남자의 역할이었다.

(가장 좋은 것은 여자가 멘탈이 강했다면 좋았겠지만) 이런 여자들을 사랑하기로 결심한 남자라면 여자의 상황에 맞게 이해하고 사랑을 해주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책 안에 인물들이 자살은 선택함에 있어서 ‘누가 잘못했기 때문에 자살하였다’는 것은 아니지만 당사자가 자살을 하게 된 원인으로 생각하는 인물은 각각 존재할 것이다. 나오코에게 있어서는 와타나베, (정신적 문제를 일으키게 된 것은) 레이코에게는 남편의 부족한 관심(더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했다는 의미), 하쓰미에게는 나가자와(아마도?).

소설의 전반에 걸쳐 와타나베 중심의 1인칭 주인공 시점이라서 정말로 와타나베만의 관점만 담겨있어 상대들의 마음을 추측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리고 와타나베를 통해 추측해본 여주인공들을 마음을 보았을 때, 와타나베가 정말 이정도의 행동을 보인다면 충분히 죽고 싶었을 수 있겠구나 싶기도 하다(심정이 그렇다는 말).

이런 무관심 혹은 눈치없는 남자가 바로 나오코가 사랑했고 함께 하고 싶었던 인물이고 너무나도 (와타나베와 함께 하는 미래에서의 나오코가 할 미친 행동에 대한) 걱정이 많았는데, 그 걱정을 남자는 알지도 못하고 위로도 못해줘서 혼자 끙끙앓다가 자살을 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끄읕~!

노르웨이의 숲(번역본 제목 : 상실의 시대)

‘노르웨이의 숲’ / 무라카미 하루키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저의 생각을 쓴 글입니다.)

최근 일이 바빠 초반부 빼고는 얼마 읽지 못했던 ‘노르웨이의 숲’을 오늘 도서관에 찾아가 세 시간을 투자해 모두 읽어버렸다. 생각보다 우울하고 생각보다 기묘했으며 생각보다 더 섬세하고 부드럽고 아슬아슬했다. 생각할 거리가 많은 소설이었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주인공인 와타나베와 고등학교 시절 그의 유일한 친구였던 기즈키, 그리고 그의 여자 친구 나오코는 늘 셋이 함께 다니곤 했다. 그러던 중 셋의 중심이었던 기즈키가 이유모를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와타나베는 그 이후 도망치듯 도쿄의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도쿄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던 와타나베는 우연히 지하철에서 다시 나오코를 만나게 되고 나오코에 대해 사랑인지 연민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낀다. 그러나 여전히 나오코는 기즈키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로 불안정한 상태였고 결국 그녀는 치료를 위해 와타나베와 연락을 끊고 요양원에 들어간다. 나오코가 뒤늦게 보낸 편지로 그녀가 “아미 사”라는 요양원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와타나베는 그녀를 찾아가 묻어두었던 기즈키와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이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한편 같은 대학에서 만나게 된 미도리는 기즈키의 죽음 이후 모두와 벽을 치고 지내던 와타나베의 삶 속에 뛰어 들어와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생기 넘치고 당당한 미도리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던 와타나베는 그녀의 환한 모습 이면에 있는 아픔을 알게 되고 연민을 느끼며 점점 더 미도리와 깊은 관계가 되어간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나오코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이야기하는 그는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온 두 여성 사이에서 스스로의 감정을 감당하지 못하고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운 스무 살을 보낸다.

큰 줄거리의 진행만 보면 그저 그런 청춘소설과 다를 바 없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상당히 많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의 키워드를 말하자면 죽음, 사랑, 섹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이렇게 네 가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네 키워드를 가지고 소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 죽음

와타나베와 나오코 두 사람 모두 과거 자신들의 중심이었던 기즈키의 죽음 으로 인해 세상이 뒤바뀌는 경험을 한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라는 존재의 가치를 생각해본다면 와타나베에게 기즈키와 나오코는 세상의 전부였을 것이다. 기즈키와 나오코가 자신의 친구이자 곧 세계인 것이다. 기즈키의 죽음으로 와타나베에게는 세계의 절반 이상이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었을 것이고 그 이후 와타나베는 죽음이 이미 자신의 삶의 일부에 스며들어 있다고 느낀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고 멀게만 느껴졌던 죽음이 자신의 바로 옆에 있다고 느끼게 된 그 순간이 그에게는 자신의 모든 가치관이 뒤바뀌는 순간이지 않았을까. 마찬가지로 나오코 또한 영원히 기즈키의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딘가 뒤틀린 상태로 불안한 삶을 살다 이른 나이에 자살로 숨을 거둔다. 그만큼 죽음이란 우리가 피부로 느끼지 못할 뿐 언제나 우리 곁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2. 섹스와 사랑

위에서 말했든 와타나베는 죽음이 언제 고개를 쳐들지 모르는 삶을 살고 있다고 느낀다. 그런 그는 외로움을 느낄 때마다 나가사와라는 같은 기숙사 상급생과 함께 신주쿠 거리를 거닐며 술집에서 처음 만나는 여자와 섹스 를 함으로써 사람의 온기를 느끼려 한다. 그러나 늘 다음날 아침이면 스스로에게 환멸을 느낀다. 필자에게 그러한 와타나베의 행동은 죽음이 스며들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자신의 삶에 무언가 의미를 남기기 위해 타인과 교류할 수 있는 육체적인 관계 중 가장 깊은 관계인 섹스를 갈구했던 것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그녀에게 와타나베는 육체적 쾌락을 만족시키기 위한 도구였을 뿐, 그녀의 삶에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는 것을 다음날 아침 그녀의 말과 행동으로 뼈저리게 느끼게 되니 스스로에게 환멸을 느낄 수밖에.

그렇게 성욕과 섹스, 고독 그리고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방황하던 와타나베는 결국 나오코에게 느끼는 자신의 감정이 진정한 사랑 임을 깨닫고 나서 비로소 그 굴레에서 자유로워진다. 사랑으로 인해 자신의 삶에 있어 그녀가, 그녀의 삶에 있어 자신이 이미 그 무엇보다 커다란 의미로 남을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그 대상인 나오코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와타나베가 단 한 번도 여성과 관계를 갖지 않았던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러한 와타나베의 변화를 통해 작가는 죽음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이 짧은 삶의 진정한 의미는 섹스(육체적 쾌락) 가 아닌 사랑(정신적 가치) 에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3.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개인적으로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라는 키워드가 이 소설의 중심을 꿰뚫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오코가 치료를 받는 요양원은 무언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자연과 함께 벗 삼아 생활하며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곳이다. 와타나베는 그곳에서 머무는 3일 동안 스태프와 환자를 구분하지 못한다. 오히려 의사인 미야타는 사람들에게 이상한 연설을 맥락도 없이 늘어놓는 등 사회성이 부족하고 전에 있던 기노시타라는 경리는 노이로제로 자살을 시도했었으며 도쿠시마라는 전 간호사는 알코올 중독이 심해서 잘렸다. 와타나베는 그 이야기를 듣고 말한다. “환자와 스태프를 전부 바꿔도 될 정도네요.” 그러한 와타나베에게 나오코와 같은 방을 쓰던 레이코 씨는”우리에게도 아주 정상적인 부분이 있어. 그건 우리는 스스로 비정상이란 걸 안다는 거지.”라는 말을 던진다.

가만히 소설을 보면 등장인물 중에 정상적인 사람이 거의 없다. 나가사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술집에서 만난 여성들과 원나잇을 즐기면서도 그에 대한 죄책감도 하나 없고 스스로 금욕주의라고까지 말한다. 그의 여자 친구인 하쓰미는 돈 많은 집안의 딸들이 다니는 여대에 재학 중인 좋은 집안의 고상한 성품을 가진 아가씨이면서 남자 친구인 나가사와가 다른 여자들과 섹스를 하고 다니는 것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인한다. 와타나베의 룸메이트였던 특공대는 행동 하나만 봐도 흔히 말하는 정상은 아니고 등장하는 다른 단역들도 마찬가지로 극히 평범한 정상인이라고 할만한 사람이 거의 없다. 이런 사람들이 살고 있는 바깥 세계와 요양원 속 세계를 비교하던 와타나베는 요양원에서 돌아온 날 저녁, 신주쿠의 레코드 가게에 알바를 하러 간다. 그는 가게 밖으로 비치는 스스로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비정상적인 광경에 혼란스러워한다.

스스로가 비정상이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도우며 살아가는 평화로운 요양원 속 세계와 스스로를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경제적 풍요에 힘입어 방탕한 생활과 육체적 쾌락에 몰두하며 살아가는 바깥 세계. 필자는 작가가 이 둘의 극명한 비교를 통해 1960년대 고도성장기의 일본이 가진 문제점들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경제 성장이 급속화되면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당시의 일본 사회 자체가 비정상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며 과연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무엇인지 한번 더 생각해보도록 만든다. 한편으로는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도 꼭 생각해보아야 할 부분인 듯싶어 씁쓸하다.

4. 결론

많은 부분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그냥 가볍게 읽으면 뛰어난 문장력과 묘사(상당히 특이한 비유들이 많이 나온다)를 바탕으로 술술 읽히는 청춘 연애 소설(??)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깊이 파고들면 들수록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는 소설이었다. 이 소설이 던지는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은 무엇이며 과연 당시의 일본 사회는 정상인가”라는 물음이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의 청춘들에게도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까.

[책 추천] 상실의 시대 등장인물 소개/감상평

안녕하세요! 오늘은 책 추천을 하려고 해요.

제가 힘들 때 읽었던 책인데 책의 내용은 글의 제목과 같이

전반적으로 우울합니다. 주인공과 비슷한 경험이 있었던 저로서는

읽으면서 상처를 되짚어 보듯이 아픈 책이었어요.

하지만 다 읽지 않으면 상처의 응어리가 회복되지 않고 남을 것 같아서

꾸역꾸역 읽었던 기억이 많이 남네요

삶과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작품이며,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들의 시선에 대해,

사회적인 약자 구원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되는 책이었습니다.

여담으로 상실의 시대의 원래 원제는 노르웨이의 숲이었는데요

인기가 없어서 상실의 시대로 제목을 변경하여 출판하였더니

베스트셀러가 되어버렸답니다.

우울한 책을 좋아하지 않는 분에게는 추천해드리지 않고요

어느 기사를 읽어보니 상실의 시대는 젊은 시절의 센스 & 섹스로 소개하더라고요

그만큼 센스 & 섹스로 범벅된 책입니다.

그러므로 야한 걸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강추!

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표작

차례

등장인물 소개

감상평

등장인물

와타나베 토우루(주인공)

그는 항상 삼각관계의 축을 이루고 있다.

1. 나오코 기즈키 2. 나오코, 미도리. 3. 나오코, 레이코 4. 나가사와, 하쓰미

고등학교 때 절친한 친구 기즈키의 자살로 인해 “죽음은 삶의 반대편 극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며

내성적이고 과묵한 성격으로 피츠제럴드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오는 주인공과 비슷한 말투를 사용한다.

책을 많이 읽고 그중에서도 고전을 반복해서 읽는 것을 즐기는데

그런 이유로 같은 기숙사의 나가사와라는 선배와 친분이 생기기도 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와타나베는 다른 사람들보다 달관적이다.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써의 사고의 변화, 다른 사람과 다른 십자가를 지고 가는 와타나베

무거운 짐을 끌고 가는 그는 남에게 애초 로워 보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 불완전함이 누군가에게는 부성애로 또한 모성애를 자극하여

자신도 모르게 자연스레 사람을 끌어당기는 능력을 가지게 된 것 같다.

기즈키

고등학교 시절 와타나베, 기즈키, 나오코는 항상 같이 다녔으며 기즈키가 없는 와타나베와 나오코는 페티 없는 햄버거 사이로 여겨졌다. 하지만 어느 날 와타나베와 함께 당구를 치고 그 날밤 자기 집 차고 안에서 자살한다. 그 날 후부터 와타나베와 나오코는 서로 간의 벽이 생긴다. 죽기 진전 마지막에 만난 사람이 와타나베라서 나오코가 와타나베를 미워하는 것 같기도 하다.

기즈키는 왜 자살을 해야만 했을까? 나오코와의 트러블 때문일까 아니면 군중 속의 외로움일까

기즈키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알 수 없지만, 그 이유가 어떻던 이 사건으로 인해 상실의 시대는 막을 오른다.

나오코

나오코는 세 살 때부터 함께 지낸 남자 친구인 기즈키의 자살로 인해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스무 살 생일 때 와타나베와 단 한번 성관계를 맺은 후에 마음의 병은 심화되어 결국 휴학 결정을 한 후에 요양원에 들어가게 된다.

와타나베는 친구인 기즈키를 대신하여 나오코를 책임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와타나베에게는 나오코가 십자가인 셈이다.

하지만 나오코는 충분히 매력적이고 이뻤으며 아름다웠다. 십자가를 좋아하게 돼버려 십자가를 놓을 수도 언제까지 지고 갈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길에 빠져든다.

레이코

아미료라는 요양원에서 나오코의 룸메이자 나오코를 잘 보살펴주는 매력적인 중년 여성

촉망받는 피아니스트였으나 알 수 없는 병으로 인해 꿈이 좌절된 후, 피아노 선생이 되고 그 후 수강생과 결혼하게 된다.

지인의 소개로 피아노 개인 레슨을 하게 되는데 레즈비언 제자에게 반겁탈을 당하고, 동네에 그녀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퍼지자 간간히 붙잡고 있던 희망을 끈을 놓아버리게 된다. 그 계기로 모든 것을 버리고 요양원에 들어가게 된다.

1. 나오코, 와타나베, 기즈키 시절에 기즈키가 만남의 중심 축이였던 와타나베와 마지막 날을 보낸 것처럼

3. 나오코, 레이코, 와타나베 나오코 또한 레이코와 마지막 날을 보내고 자살하게 된다.

1. 나오코, 와타나베, 기즈키 기즈키가 죽은 후 둘은 관계를 맺고

3. 나오코, 레이코, 와타나베 나오코가 죽은 후 둘은 관계를 맺는다.

개인적으로는 나오코와 와타나베의 섹스는 나오코의 병을 악화시키는 계기가 되지만

레이코와 와타나베의 섹스는 서로의 족쇄를 끊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미도리

활발하고 적극적이며 능동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나오코와는 정반대의 인물이다. 와타나베가 나오코와 떨어져 있는 동안

와타나베에게 십자가와 동정, 책임감에 대한 사랑이 아닌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해 준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 엄청 직설적이며 대담하다 내면의 슬픔이나 상처를 극복해낼 수 있는 힘이 있는 강인한 인물이지만 똘끼다 다분하다.

나가사와

와타나베와 같은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선배로써 머리, 돈, 집안 모든 것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인간성은 미묘하게 뒤틀려져 있어, 자기와 같이 다른 사람과 관점이 조금 다른 와타나베에게 끌리게 된다.

나가사와는 정직하고 화술에 능하며 거만할 정도로 당당하며 하쓰미가 자신에게 과분한 존재라는 것을 알지만 결국 그녀를 잃어버린 것에 대해 깊은 후회를 한다.

하쓰미

나가사와의 오랜 연인으로 그녀 역시 학력, 재력을 갖췄으며 와타나베가 이끌릴만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여성이었다. 나가사와를 사랑하지만 나가사와는 여자에 대한 관점은 JYP 사장님과 일맥상통한다. 즉 그저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나가사와가 외국으로 떠난 뒤 그녀는 다른 남자와 결혼하게 되지만 결국 자살을 하고 만다.

돌격대

와타나베의 룸메이트. 결벽증을 가지고 있으며 실명보다는 ‘돌격대’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특이한 성격과 행동으로 나와 내 주위 친구들의 놀림거리가 되며 주로 나오코를 웃겨주는 용도로 많이 사용된다.

하지만 주인공에게 반딧불이를 준 후 자취를 감춰버린다.

감상평

제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친구들을 만나 오면서 가장 잊을 수 없던 말들은

“마음이 너무 텅 비어 채울 것이 없어서 술로 채워요.”, “당신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천사 같아요”

“섹스할 때는 아무 생각이 안 나서 좋아요, 그래서 술도 좋고요 취하면 아무 생각도 안 들잖아요.”

이 세 문장들이다. 그녀 또한 나에게는 천사 같았고 한편으로는 십자가였다.

그녀를 너무 사랑했지만, 일반적인 사랑과는 너무 다른 사랑에 지쳐만 갔다.

주위에서는 그녀에 대해서 함부로 말했으며 그 말에 화를 내는 나조차 그녀가 일반 사람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같아 싫었다.

그래서 나는 나오코와 와타나베의 관계가 너무도 안타까웠다. 끝이 보이는 관계였고

사실 자신 또한 끝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녀의 대한 책임감, 연민으로 애써 외면하면 하는 와타나베

그녀가 혼자 떠나버릴 때까지 그 마음을 유지한 와타나베에게 경의를 표한다.

나는 겁쟁이였고 그녀에게도 도망쳤다. 하지만 와타나베는 끝까지 그녀에 대한 책임을 다했으며

돌격대가 준 병 속의 반딧불이처럼 결국은 다시 세상에 나와 사람들 속에 섞여 평범한 사랑을 할 것이다.

나에게는 그저 나오코와 와타나베의 관계만으로도 몇 날 며칠 고민하게 된 책이었다.

인생이 힘들 때 한 번쯤 읽어 본다면 그의 인생의 비애를 보고 다시금 일어설 힘을 찾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원제:노르웨이의 숲) 줄거리와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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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상실의 시대>로 잘 알려진 일본의 인기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다섯번째 장편소설 노르웨이의 숲은 아직까지도 전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표작품입니다. 1987년 일본에서 발행되어 현재까지 1000만부 이상의 발행부수를 기록하여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중에서 가장 많은 판매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2010년에는 베트남 감독인 쩐아인훙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되기도 했습니다.

영화 상실의 시대 포스터 (2011)

1. 줄거리

이야기는 독일 함부르크 공항을 떠난 주인공이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주인공은 “나”인 화자 와타나베이며 도쿄 한 대학의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연극과에 다니고 있는 대학생입니다. 고향은 고베이며 진학을 계기로 도쿄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어느날 주인공은 우연히 전철 안에서 나오코와 재회합니다. 두 사람은 다른 용건이 없었기 때문에 함께 전철에서 내리고 그 곳에서 나오코는 별다른 말 없이 마냥 걷기만 합니다. 오랜만에 만난 나오코는 체중이 훨씬 줄어든 것 같지만 그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라고 평가합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주인공과 나오코는 매주 만나게 됩니다. 나오코는 고베시절 주인공의 절친한 친구였던 키즈키의 여자친구였습니다. 그러나 키즈키는 어느날 자동차 배기가스를 마시고 자살하게 되고 주인공과 나오코는 모두 그 일에서 벗어나 도쿄로 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 더이상 나오코와 만날 수 없게 된 어느날 그녀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합니다. 그녀는 교토의 한 요양원에 들어가있었습니다. 그 시설은 한번 나가면 다시 들어갈 수 없다는 규칙이 있는 곳입니다. 나오코와 만나지 못하게 된 사이에 주인공은 미도리라는 어린 여자를 알게 됩니다. 미도리에게는 남자친구가 있고 주인공에게는 나오코가 있었지만 서로 스스럼없이 특별한 친구로써 신뢰해 갑니다.

그러다 나오코의 만나러 와달라는 편지를 받고 주인공은 교토로 갑니다. 그 요양원에서 모두에게 음악치료를 하고 있으면서도 요양원의 환자이기도 한 레이코를 만납니다. 레이코는 나오코의 룸메이트로 두 사람은 요양원에서 서로 의지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나오코는 요양원에서 매우 평온한 시간을 보내며 점차 회복하는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 나오코와 한동안 시간을 보내다가 주인공은 다시 도쿄로 돌아갑니다. 글고 주인공은 기숙사에서 나와 혼자 살게 되고 나오코에게는 언젠가 같이 살자는 내용의 편지를 씁니다. 그는 매주 나오코에게 편지를 쓰고 나오코의 답장은 오기도 하고 안오기도 합니다.

곧 회복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오코의 회복은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정신상태가 점점 심하게 무너지고 마침내 시설에서도 나와 병원에서 집중적인 치료를 받게 됩니다. 그 사이 주인공은 미도리와의 관계가 깊어집니다. 하지만 나오코를 지키겠다는 강한 의지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 나오코의 요양원 룸메이트였던 나오코에게 편지를 보내곤 합니다.

그러나 주인공의 간절한 기도와 염원에도 나오코는 결국 자살하고 맙니다. 그 아픔 때문에 주인공은 한달동안 방랑여행을 떠났습니다. 도쿄에 다시 주인공이 돌아온 후 나오코가 죽었을 때의 이야기를 하러 레이코씨가 시설에서 나와 주인공을 만나러 옵니다. 한번 나오면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요양원에서 나온 것입니다. 나오코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은 레이코였습니다.

둘은 만나 단둘이 와인을 따르고 기타도 치고 노래를 부르며 나오코를 위한 조촐한 장례식을 치릅니다. 그리고 나서 두 사람은 섹스를 합니다. 주인공은 미도리에게 전화를 겁니다. 미도리와 사귀고 싶다는 말을 전하는데 “지금 어디에 있니?” 라는 미도리의 물음에 “내가 지금 어디에 있지” 라고 되물으며 소설은 끝이납니다.

2. 등장인물

와타나베 토오루

주인공이며 이 소설의 화자입니다. 고베의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도쿄의 사립대학 문학부 연극과에 진학했습니다. 고베에 여자친구가 있었지만 도쿄로 상경하며 헤어지게 됩니다. 대학교 1,2학년은 기숙사에서 생활했습니다. 대학생이 되어 고등학교 시절의 절친한 친구였던 키즈키의 여자친구였던 나오코를 우연히 만나 연인관계가 되지만 그녀가 요양을 위해 교토로 떠나버리고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모르는 여성들과 잠자리를 하기도 합니다.

키즈키

와타나베 토오루의 친구이자 나오코의 남자친구였습니다. 나오코와는 아주 어릴때부터 소꿉친구였기 때문에 서로 모르는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사이가 좋았습니다. 그러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5월, 집 차고에서 배기가스를 마시고 자살합니다. 나오코와 키즈키는 모두에게 사이좋은 연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와타나베는 대학생이 되어 사귀게된 나오코가 처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나오코

소설에서는 여주인공에 가까운 역할로 과거는 친구 키즈키의 여자친구였지만 현재는 주인공 와타나베의 여자친구입니다. 키즈키가 자살해 버린 후 조금씩 마음의 병을 앓게 되고 와타나베와 섹스 후 치료를 위해 대학을 휴학하고 치료시설인 아미료라는 요양원에 들어갑니다. 병문안을 온 와타나베와 연인관계가 됩니다.

미도리

와타나베와 같은 대학에서 같은 수업을 듣는 여성입니다. 처음 와타나베와 만났을 때는 빡빡머리였습니다. 아버지는 서점은 운영하고 있으며 딱딱하고 재미없는 남자친구가 있습니다.

레이코

아미료에서 나오코의 룸메이트입니다. 피아노를 잘 쳐서 요양원 사람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고 기타도 잘 칠 수 있습니다. 원래 결혼을 했지만 어떤 사건으로 이혼하고 8년간 요양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나가사와

도쿄대학 법학부에 다니고 있는 훈훈한 외모의 남학생입니다. 사후 30년이 지나지 않은 작가의 작품은 읽지 않는다는 등 기묘한 고집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츠미라는 여자친구가 있지만 와타나베와 어울려 방탕한 생활을 하며 많은 여성들과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츠미

부자들의 자녀가 다니는 여대에 재학 중이며 나가사와의 여자친구입니다. 나가사와가 여러 여성과 성관계를 하고 있는 것을 알지만 묵인하고 있습니다. 결국 나가사와와 헤어지고 다른남자와 결혼하지만 끝에는 자살하고 맙니다.

3. <상실의 시대>에 대한 해설과 고찰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자전적 소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본은 물론 전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작가이며 노벨 문학상 후보에도 여러번 올랐던 인물입니다. 그의 다섯번째 장편소설로 1987년 발표된 <노르웨이의 숲>은 그의 자전적 소설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이 작품의 주인공은 무라카미 하루키와 마찬가지로 문과대학에서 연극을 배우는 대학생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졸업한 와세다 대학을 배경으로 한 강의나 교내의 모습도 아주 세세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주인공이 자주 다니던 도서관도 실제로 존재하고 있으며 노면전차의 모습 또한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본의 관서지방에서 자랐지만 청년시절을 와세다 대학에서 보냈기 때문에 동경을 무대로 한 작품이 많습니다. 결과적으로 <노르웨이의 숲>은 그의 자전적 소설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상실의 시대 와타나베와 나오코

단편소설 <반딧불이>가 원작

무라카미 하루키는 본작을 쓰기전에 <반딧불이, 헛간을 태우다 (1987)> 에서 <반딧불이>라는 작품을 먼저 발표했습니다. 이 작품에는 <노르웨이의 숲>의 전반부에서 그려지는 기숙사에서의 생활이나 전철에서 나오코와 재회하여 요츠야에서 이이다바시로 연결되는 호리단을 걷는 묘사가 동일하게 그려집니다. 단편 <반딧불이>는 노르웨의 숲 2장과 3장 내용에 영향을 줍니다. 그러나 <노르웨이의 숲>에서 돌격대라는 별명이 붙었던 주인공의 기숙사 룸메이트는 <반딧불이>에서는 룸메이트 그대로이지만 친구나 애인에게도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주인공 와타나베 토오루의 매력

주인공 와타나베 토오루는 왠지 여성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특별히 와타나베가 적극적으로 작업하지 않아도 여성들이 먼저 관심을 보이고 모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도리가 주인공에게 “얼마만큼 (내가) 좋아?” 라고 묻는 장면에서 와타나베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봄날의 곰만큼” 이런 이상한 표현으로 미도리에게 봄날의 곰에 대해 상상하게 하며 그녀에 대한 호의를 간접적으로 표현합니다.

<노르웨이의 숲>만 아니라 대부분의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에서 “여성이 주인공에게 말을 걸어오고 언젠가부터 주인공과 여성은 호감을 가지게 된다.”라는 구도가 많이 있습니다. 여성들의 접근에 대해서 주인공은 단지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뿐 그녀들과 “연애”를 잘 해나가기는 어렵습니다. 주인공에게는 주체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조금전의 “봄날의 곰”과 같은 대답에서도 애매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와타나베가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은 어딘가 풍기는 어두운 분위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주체성이 없고 어딘가 그림자가 있는듯한 분위기가 이성에게 있어서는 그냥 놔둘 수 없는 존재로 여겨지게 하는 것은 아닐지요.

나가사와의 존재

나가사와는 와타나베가 사는 기숙사의 선배로 여러가지로 여러가지로 와타나베와 얽히게 됩니다. 그는 용모단정한 도쿄대학의 법학과 학생으로 흠잡을 수 없는 완벽한 존재로도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츠미라는 여자친구가 있음에도 모르는 여성들과 의미없는 섹스를 반복하는 인물입니다. 하츠미는 결국 그와 헤어져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이후 자살하고 맙니다. 작품에서는 두 사람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하츠미가 왜 자살을 했는지 끝까지 알 수는 없지만 몇가지 사건으로 그 이유를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애초에 둘이 헤어진 이유는 나가사와가 하츠미를 구하기는 커녕 그녀의 병세를 악화시킨다고 이해하고 외무성에 응시함으로써 그녀를 떠나려고 합니다. 취업축하파티에서는 일부러 하츠미의 미움을 살만한 행동을 합니다. 그리고 그는 독일에 부임하게 되고 그것이 명확한 전환점이 되어 둘은 헤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하츠미에게 있어서 나가사와는 현실세계와 연결되는 연결고리였던 것 같습니다. 둘이 헤어지게 됨으로써 그려는 서서히 자신만의 세계에 침식되어 결국 자살을 선택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오코가 말한 우물이야기

어느날 나오코는 갑자기 와타나베에게 우물이야기를 합니다. 와타나베는 우물이야기를 듣고나서 다음과 같이 서술합니다. “나오코가 우물이야기를 해준 후로 나는 그 우물이 없는 초원의 풍경을 기억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본 작품뿐만 아니라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서 우물은 매우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합니다. 여기에서 우물은 “삶의 세계와 죽음의 세계를 잇는 매체”로 취급됩니다. 나오코가 와타나베에게 우물 이야기를 했을 때는 이미 자신이 죽음의 문턱에 와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와타나베는 우물의 모습(죽음의 세계)없이는 초원의 풍경( 삶의 세계)를 생각해낼 수 없게 됩니다. 그것은 이 소설의 큰 기조 중 하나로 결국 죽음이 삶의 일부임을 인정하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나오코의 자살

노르웨이의 숲에서 죽음을 상징하는 존재로 그려지는 나오코는 이야기의 초반부터 등장하지만 그 등장부터 이미 짙게 죽음을 예감하게 합니다. 실제로 나오코는 “만약 내가 깊은 구덩이에 빠지고, 그것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면…” 등 불안에 사로집할때가 있다고 와타나베에 고백합니다. 이 일에서 알 수 있듯이 그녀는 이미 자신의 죽음을 의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오코는 왜 자신의 죽음을 의식하게 되었을까요? 당시 사귀던 키즈키가 죽은 후 나오코는 죽은 것처러 살아있는 상태가 됩니다. 이것은 죽은 자와 산 자가 그녀 속에 혼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굵은 글씨로 되어있는 “죽음은 삶의 대척점으로서가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라는 노르웨이의 숲의 테마라고도 할 수 있는 이 문장은 키즈키의 죽음을 계기로 나오코 안에서 싹트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와타나베와의 재회가 그녀를 바꿔놓습니다. 처음 그녀가 와타나베를 만난 이유는 키즈키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고 와타나베와 함께 있음으로 죽은 키즈키를 해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사람의 관계는 서서히 변화를 겪게 되고 그녀의 생일날 섹스를 함으로써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여기에서 나오코는 지금까지 없었던 자의식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녀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은 불안정한 상태를 피하기 위해 요양원인 아미료에 들어가지만 결국 자살하고 맙니다.

<노르웨이의 숲>이 그리는 삶과 죽음

죽음은 삶의 대척점으로서가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한다는 것. 상기된 것처럼 이 문장은 키즈키가 자살한 장면 직후 유일하게 이 작품에서 굵은 글씨로 쓰여져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키즈키와 나오코가 자살함으로써 와타나베에게 죽음은 인간 속에 항상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늘 존재하는 것입니다. 사실 인간은 죽음을 내포하면서 항상 존재합니다. 태어나면서 부터 죽음을 향해 살아가고 있으며 이미 죽음은 확실하게 기약되어 있는 약속인 것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죽음이라는 것에 대한 친근함이 담담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노르웨이의 숲>의 결말

나오코가 자살하고 와타나베는 그 슬픔을 달래기 위해 한달에 걸친 여행을 떠납니다. 여행을 마치고 그가 도쿄로 돌아오자 나오코가 죽었을 때를 이야기 하기 위해 레이코가 시설에서 나와 그를 찾아옵니다.

나오코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마친 후, 두 사람은 함께 나오코를 위한 조촐한 장례식을 치릅니다. 와인을 따르고 레이코가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릅니다. 슬픔에 잠기기 위한 장례식이 아니라 두 사람에게 있어서는 나오코를 기리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긍정적인 의식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 두 사람은 섹스를 합니다.

다음날 레이코는 홋카오도로 여행을 떠납니다. 그녀와 헤어진 후 와타나베가 전화를 겁니다. 그가 누구에게 전화를 거는 것인지는 나오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키즈키를 비롯해 나오코와 레이코처럼 그의 주위에서 계속해서 사람들이 떠나가고 와타나베는 또다시 고독해집니다. 그러나 인간은 삶을 혼자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함께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필요하고 그것이 바로 “삶”이니까요. 깊이 사랑하고 강하게 사는 것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는 결말입니다.

섹스의 의미

이 작품에서 와타나베는 나오코를 좋아하는 한편 나가사와와 어울려 여러 이름모를 여성들과 어울려 하룻밤을 보내곤 합니다. 독자는 소설을 읽으면서 와타나베가 정말 나오코를 사랑하고 있는 것인지 의구심을 갖게 될 수도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에서 섹스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서로를 연결하고 이해하며 회복시키는 의미를 갖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카와아이 하야오를 만나러 가다>라는 대담집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육체와 정신 사이에 있는 것이 섹스다”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자애들하고 엄청 자고 싶어져요”라는 와타나베의 대사는 즉 “정신에 큰 타격을 입고 있어 회복이 필요하다”라는 표현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목에 얽힌 이야기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제목은 비틀즈의 “Norwegian Wood (This Bird Has Flown)”에서 왔습니다. 소설 서두에서 공항에서 울려퍼지기도 하고 과거에는 나오코가 좋아했던 노래이며 교토의 요양소를 노르웨이의 숲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만 원제에서의 Norwegian Wood는 노르웨이의 숲이 아니라 노르웨이산 목재가구가 맞다고 합니다. 어쨌든 비틀즈의 곡 가사 속에서는 한여자와 만나고 헤어지고 떠나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습니다. 가사에서 “좋은 방이지? 노르웨이산 목재가구야” 에서 Norwegian Wood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상실의 시대>라는 번안된 제목으로 출간되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는 무라카미 하루키와는 상관없이 상실의 시대를 출간한 출판사에서 붙인 제목이라고 합니다. 추후에는 다시 노르웨이의 숲으로 출간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우리에게는 상실의 시대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듯 합니다.

작가의 자전적 배경을 바탕으로 삶과 죽음에 정면으로 부딪치는 청춘의 모습을 담담히 그린 이야기. 상실의 시대는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를만큼 유명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인만큼 한번쯤 읽어볼 가치가 있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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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책 속으로

확실히 그것은 진리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동시에 죽음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배워야만 할 진리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나오코의 죽음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어떠한 진리도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어떠한 진리도 어떠한 성실함도 어떠한 강함도 어떠한 부드러움도 그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 슬픔을 실컷 슬퍼한 끝에 거기서 무엇인가를 배우는 길밖에 없으며, 그리고 그렇게 배운 무엇도 다음에 닥쳐오는 예기치 않은 슬픔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 p.413

하지만 물론 그가 정말로 무엇을 이야기 하고 싶었는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아마 그는 어쩌면 나를 다른 누구와 착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어떻든 그는 찬비 내리는 금요일 아침에 세상을 떠났으므로, 이제 진실이 무엇이었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게 되었다. 아마도 숨을 거둘 때의 그는 한층 더 작게 오그라들어 있었을 것이라고 나는 상상했다. 그리고 소각로 속에서 한 줌의 재가 되어 버렸을 것 이라고. — p.332

죽음은 삶의 반대편 극단에 있는것이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

그때까지도 나는 죽음이라는 것을, 삶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독립적인 존재로 파악하고 있었다. 즉 ‘죽음은 언젠가는 확실히 우리들을 그 손아귀에 거머쥐게 된다. 그러나 거꾸로 말하면, 죽음이 우리들을 사로잡는 그날까지 우리들은 죽음에 붙잡히는 일이 없는 것이다’하고.

그것은 나에겐 지극히 당연하고 논리적인 명제로 생각되었다. 삶은 이쪽에 있으며, 죽음은 저쪽에 있다. 나는 이쪽에 있고, 저쪽에는 없다.

그러나 기즈키가 죽은 밤을 경계선으로 하여, 나로선 이제 그런 식으로 죽음을(그리고 삶을) 단순하게 파악할 수는 없게 되어 버렸다. 죽음은 삶의 반대편 저쪽에 있는 존재 따위가 아니었다. 죽음은 ‘나’라는 존재 속에 본질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것이며, 그 사실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망각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열일곱 살의 5월 어느 날 밤에 기즈키를 잡아간 죽음은, 그때 동시에 나를 사로잡았던 것이다. — p.49

‘자기 지금 어디 있는 거야?’

그녀는 조용한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는 수화기를 든 채 고개를 들고, 공중전화 부스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그곳이 어딘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대체 여기가 어디란 말인가? 내눈에 비치는 것은 어디랄것도 없이 걸음을 재촉하는 무수한 사람들의 모습 뿐이 었다. 나는 아무데도 아닌 장소의 한가운데서 계속 미도리를 부르고 있었다. — p.441

이봐, 일어나지 못해? 난 아직도 여기 있어. 일어나! 일어나서 생각해 봐! 왜 내가 아직도 여기 있는가 하는 그 이유를. 아픔은 없다. 아픔은 전혀 없다. 걷어찰 때마다 공허한 소리만 날 뿐이다. 그리고 그 소리마저도 언젠가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다른 모든 것이 결국은 사라져 버렸던 것처럼. 그러나 함부르크 공항의 루프트한자 비행기 안에서 그것은 여느때보다도 오래, 여느때보다도 세차게 내 머리를 걷어차고 있었다. 일어나라, 생각해 보라, 하고. — p.39

외로울 때면 나는 울어 버려. 울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라고 레이코 언니는 말해. 하지만 외로움이란 정말 괴로운 거야. 내가 외로워하고 있으면 밤의 어둠 속에서 온갖 사람들이 말을 걸어 오곤 해. 밤에 나무들이 바람결에 사각사각 소리를 내듯 사람들이 내게 말을 걸어 와. 그럴 땐 기즈키나 언니를 상대로 많은 이야기를 해. 그들 역시 외로워서 말상대를 찾고 있는 거야. — p.358

와타나베는 정말 너무나 평범한 학생이다. 그렇게 잘 생긴 학생도 아니고 두뇌가 명석한 학생도 아니다. 그냥 평범하고 어떻게 보면 너무나 밋밋해서 재미가 없는 학생일 뿐이다. 하지만 와타나베의 곁에는 언제나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도 둘러싸여 있다. 나오코도 그랬고 미도리도 그랬다. 하지만 그렇게 평범하지 않은 그 사람들은 다 와타나베를 사랑했다.(설정이 조금 인위적이라는 생각도 든다.왜냐하면 와타나베는 별로 열심히 일하거나 공부하는 일도 없는데 다들 와타나베를 좋아하고 대인관계가 좋은것이 아니라 거의 무심한 그를 다들 좋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와타나베의 매력도 있다. 정말 잘난 사람이 있을때 그 사람에게 비굴하게 굴지 않는 다는 점이다. 잘난 점을 인정하고 저신과 다름을 빨리 인식하고 있는것이 와타나베의 장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와타나베의 단점은 너무나 우유뷰단하다는것에 있다. 나오코와 미도리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침으로 미도리에게는 계속해서 상처를 주기 때문이다. 가장 가슴에 남는 부분은 나오코와의 첫 섹스장면이다.

나오코의 스무살 생일에 나오코(와타나베의 절친한 친구 기즈키의 여자친구였다. 하지만 기즈키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와 이해할수 없는 하지만 마술처럼 이끌림에 의해서 밤을 같이 지낸다. 나오코와 와타나베는 그 밤을 잊지 못했고 나오코도 요양소에 있다가 그 날을 가슴속에 깊이 묻은 채 자살한다.

상실의 시대의 느낌을 내가 글로 표현하는것은 정말로 불가능하다. 내가 그 책을 읽고 또 읽을때마다 느낌이 새록새록 다르게 느껴지는것! 그것도 내가 설명을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 책에는 노르웨이의 숲이 나오지 않는다. 노르웨이의 숲은 비틀즈의 노래 제목일 뿐이다. 이 책은 정말 읽어 보기 전에는 말할 수 없는 신비한 책임에 틀림 없다. — p.

오늘은 비가 오고있구나. 비가 오는 일요일은 나를 좀 혼란스럽게 만들어. 비가오면 빨래를 할 수 엇고, 다리미질도 못하게 되니까. 산책도 못하고,옥상에서 뒹굴지도 못하지. 책상 앞에 앉아 를 자동반복으로 틀어 놓고 몇 번이고 들으면서, 비 내리는 마당 풍경이나 멍하니 바라보는 정도가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야. 전에도 썼지만 나느 일요일엔 태엽을 감지 않아. — p.337

아마 내 마음속에는 딱딱한 껍데기 같은 게 있어서, 그걸 뚫고 안으로 들어 올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제한디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제대로 사람을 사랑 할 수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지금까지 누군가를 사랑한 적은 없어?’ 하고 그녀가 물었다.

‘없어.’

그녀는 그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가을이 끝나고 찬바람이 거리를 휘몰아치자, 그녀는 가끔씩 내 팔에 몸을 기대었다. — p.54-55

성장의 고통 같은 것을 치러야 할 때에 그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바람에 그 고지서가 이제야 돌아온 거예요. 그래서 기즈키는 그렇게 되었고, 나는 이렇게 여기 있는 거고. 우린 무인도에서 자란 헐벗은 아이 같은 존재였어요. 배가 고프면 바나나를 따먹고, 외로워지면 서로 품에 안고 잠든거지요. 하지만 그런 게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겠어요? 우린 자꾸만 자라고, 사회로 진출도 해야 하고. 그러니까 당신은 우리에게 중요한 존재였어요.

당신은 우리 둘을 바깥 세상과 이어주는 고리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어요. 결국엔 잘 안되었지만…(중략)물론 기즈키는 죽고 이 세상에 없지만, 당신은 나와 밖을 이어주는 유리한 고리예요, 지금도. 그리고 기즈키가 당신을 좋아했던 것처럼 나도 당신이 좋아요.그리고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도, 결과적으로 우린 당신에게 상처를 주고 말았는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렇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어요 — p.229-230

비는 아침까지도 내리고 있었다. 어젯밤과는 달리, 눈에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가는 가을비였다. 물웅덩이의 물 무늬와 처마끝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로 비가 내리고 있다는 것을 겨우 알아차릴 정도였다. 눈을 떴을 때 창 밖에는 우윳빛 안개가 자욱이 드리워 있었지만, 해가 솟아오를수록 안개는 바람에 밀려나고, 잡목 숲이며 산의 능선이 조금씩 모습을 나타내고 있었다.

어제 아침과 마찬가지로 우리들은 셋이서 아침식사를 하고 새집으로 새들을 돌보러 갔다. 나오코와 레이코 씨는 모자가 달린 비닐 비옷을 입었고, 나는 스웨터 위에 방수가 되는 윈드 브레이커를 있었다. 공기는 습기를 머금어 썰렁했다. 새들도 비를 피하려는 듯 새집 안쪽으로 깊숙이 몰려서 몸을 서로 바싹 붙여 의지하고 있었다. — p.257

맑은 공기, 밖으로부터 차단된 조용한 세계, 규칙적인 생활, 매일 하는 운동, 역시 그런 것들이 저에게는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누구에겐가 편지를 쓸 수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예요. 누구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자 책상 앞에 앉아서 펜을 들고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입니다. 물론 글로 써놓고 보면, 자신이 말하고 싶었떤 것의 아주 일부분 밖엔 표현하지 못한 것 같지만 그래도 괜찮다 싶어요. 누구에게 뭔가를 적어 보고 싶다는 그 기분이 든 것만으로도, 지금의 나로서는 행복합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당신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답니다. — p.166-167까지

내가 그리고 싶었던 것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그것이 이 소설의 간명한 테마입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의 시대를 감싸고 있었던 분위기를 그려 보고 싶었습니다. 사람을 진실로 사랑한다는 것은 자아의 무게에 맞서는 것임과 동시에 외적 사회의 무게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가 보낸 <한국의 독자들에게>중에서

나는 그동안 줄곧 유리창에 이마를 붙이고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자 이윽고 미도리가 입을 열었다.

‘당신, 지금 어디 있어요?’

그녀는 조용한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는 수화기를 든 채 얼굴을 들고 공중전화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는 지금 어디 있는 것인가. 그러나 그곳이 어딘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나는 아무데도 아닌 공간의 한가운데에서 미도리를 계속 부르고 있었다. — p.468

나는 그 동안 전화 저쪽에서 말이 없었다. 마치 전 세계의 가랑비가 온 지구의 잔디밭에 내리고 있는 것 같은 침묵만이 계속되었다. 나는 그 동안 줄곧 유리창에 이마를 붙이고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자 이윽고 미도리가 입을 열었다. ‘당신, 지금 어디 있어요?’ 그녀는 조용한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는 수화기를 든 채 얼굴을 들고 공중 전화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는 지금 어디 있는 것인가.

— p.468,—pp,14-20,—계속 살아가는 일만을 생각해야한다 중에서 — p.468, —p.14-20

기즈키가 죽었을 때, 나는 그 죽음에서 한 가지를 배웠다. 그리고 그것을 체념으로 익혔다. 혹은 익혔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이런 것이었다. ‘죽음은 삶의 대극(對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잠재해 있는 것이다.’

확실히 그것은 진리였다. 우리는 살아감으로 해서 동시에 죽음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배우지 않으면 안 될 진리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나오코의 죽음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이런 것이었다. 어떠한 진리도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떠한 진리도 어떠한 성실함도 어떠한 강함도 어떠한 부드러움도 그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 슬픔을 마음껏 슬퍼한 끝에 거기서 무엇인가를 배우는 길밖에 없으며, 그리고 그 배운 무엇도 다음에 닥쳐 오는 예기치 않은 슬픔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 p.440

그달 하순께에 ‘돌격대’가 나에게 반딧불을 주었다. 반딧불은 인스턴트 커피 병에 들어 있었다. 병 속에는 풀잎과 물이 약간 들어 있었고, 뚜껑에는 자잘한 공기 구멍이 몇 개 뚫려 있었다. — 본문 중에서

4월 중순에 나오코는 스무 살이 되었다. 내가 11월생이니까 그냐가 약 7개월 연상이 되는 셈이다. 그녀가 스무살이 된다는 게 어쩐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녀든 실상은 열여덟 살과 열아홉 살 사이를 오가는 편이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열여덟 살 다음이 열아홉 살이고, 열아홉 살 다음이 열여덟살-그렇다면 좋겠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녀는 스무 살이 되었다. 그리고 가을엔 나도 스무살이 되는 것이다. 이미 죽어 버린 기즈키만이 언제까지나 열일곱 살이었다. — p.

당신을 위해 스튜를 만들고 싶은데

내게는 냄비가 없어

당신을 위해 머플러를 뜨고싶은데

내게는 털실이 없어

당신을 위해 시를 쓰고 싶은데

내게는 펜이 없어 — p.149

‘…나오코의 경우에는 여러가지 문제가 다소 복잡하게, 줄이 얽힌 것처럼 얽혀 있어서, 그걸 하나하나 풀어나가자면 힘이 들어. 그걸 푸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지도 모르겠고, 어쩌면 어떤 기회에 확 다 풀릴 지도 모르겠고…’

(중략)

그녀는 다시 한번 농구공을 손에 들고 빙글빙글 돌리더니 이번엔 땅에 튀겼다.

‘제일 중요한 점은 서둘지 않는 거야’ 하고 레이코 씨는 내게 말했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또하나의 충고라면 충고라고 할 수 있어. 서둘지 말아야해.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일이 얽히고 설켜 있어도, 절망적인기분에 빠지거나 조바심이 나서 무리하게 잡아당기거나 하면 안 돼. 시간을 두고 하나하나 서서히 풀어 나가지 않으면 안돼는 거야. 할 수 있겠어?’

‘해보죠’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고, 또 시간을 들여도 완전하게 고쳐지지 않을지도 몰라. 학생,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린다는 건 쉽지 않아’ 하고 레이코 씨는 공을 튀기면서 말했다. ‘특히 학생 또래의 사람에게는 그래. 오로지 그녀가 낫기만을 끈기있게 기다려야 하니까. 그렇다고 거기에 기한이 있거나 보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걸 학생이 할 수 있겠어? 그럴 수 있을 만큼 나오코를 사랑해?’

‘모르겠어요’ 나는 정직하게 말했다. ‘저로선 사람을 사랑한다는게 어떤건지 정말 모르겠어요. 나오코가 하던 말과는 다른 뜻에서 말이죠. 하지만 난할 수 있는 한 해보려고 해요. 그렇게 하지 않고선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겠거든요. 어쨌든 레이코 씨가 아까 말한 것 처럼 나와 나오코는 서로 도와야 하고, 그 방법밖에 서로에 대한 구제의 길이 없을 것 같군요.’ — pp.187-188

노르웨이의 숲, 상실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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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 상실의 시대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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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에 책 3권을 읽기로 마음 먹기로 한 지, 두 달 째이다. 나는 오로지 지하철 통근시간에만 독서를 한다. 출근길에는 철학(거의 정보전달 목적의 책이지만..), 퇴근길에는 소설을 읽기로 했다. 나만의 인생 작가를 만나고 싶기에, 해외작가 작품 1권, 국내작가 작품 1권씩 꼭 선정해서 읽기로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나 히가시노 게이고같은 일본작가들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읽어서 왠지 진부할 것만 같아 괜히 거리낌이 들었다. SF는 정말 관심이 전혀 없는 장르인데 테드창까지 도전해야하나 싶었다. 어쨌든, 사람들이 많이 읽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아…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시작해 보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의 첫 입장을 말하자면… ‘진지한 병신’같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들이 이 글을 보면 빡쳐서 일상생활 불가일 수도 있는데.. 뭐 내가 그렇게 유명한 블로거도 아니고… 중요한건, 한국말은 끝까지 듣자.

# 1960년대, 경제부흥시기

아무런 지식없이 나는 이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분명, 소설의 배경이 현재는 아닐거라는 느낌이 주인공이 대학시절 운동한다는 내용이 나올 때부터인 것 같다. 그 정도로 최근 배경이라고 하더라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정말 문체가 세련됐다. 나중에 내가 잘 읽은 게 맞는지, 이 책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지 살짝 찾아봤다. 그 때, 알게 된 사실은 이 책의 배경은 1960년대였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청춘들의 자아를 찾기엔 너무 혼란한 시기였던걸까?

# 와타나베

– 주인공 와타나베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이 이야기에서 주요 인물은 나오코, 미도리, 레이코, 나가사와 이 정도로 흘러간다. 와타나베는 친구 기즈키와 그의 여자친구 나오코와 학창시절 삼총사처럼 셋이 꼭 붙어다녔다. 셋 다 아웃사이더였는데, 아웃사이더 모임마냥 셋이 꼭 붙어다녔다. 나오코가 그녀의 친구들은 한 명씩 소개시켜주려 하면 이상하게 와타나베는 다른 여자들을 소개받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졌고, 이렇게 삼총사가 가장 편하고 좋았다.

– 이 책은 서른 일곱살의 와타나베가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을 듣다가 문득 그 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기즈키는 자살했고, 나오코와 와타나베는 그의 죽음으로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나오코와 와타나베는 기즈키의 죽음 이후, 교제하게 되었다.

– 와타나베는 자기연민, 자기동정에 빠져 다른 사람을 챙길 수 없었다. 와타나베가 즐겨있는 소설들을 찾아보면 와타나베를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다고들 하는데… 그 책까지 읽기엔 갈 길이 멀다. 기즈키가 자살을 했지만, 그의 외로움을 방관하지 않았을까? 마치 나오코가 자살했을 때처럼. 한 번도 와타나베는 나오코가 힘들 때, 적극적으로 그녀를 도우려고 하지 않았다. 항상 그녀가 허락할 때까지 기다리기만 했다. 마침내 나오코가 죽고 난 뒤에 자신의 방관했던 모습들을 생각하며 괴로워 했던 것 같다. 중간에 와타나베는 나가사와 선배의 여자친구 하쓰미의 자살 소식을 몇 년 뒤에 들었다고 말한다. 마지막에 봤던 하쓰미를 그냥 두고 왔던 것이 나중에 너무 괴로웠던 것이다. 물론 그로부터 몇 년 뒤에 자살 소식이었지만.

와타나베는 자신의 주변에서 자꾸 사람들이 자살하고 있기 때문에, 너무 힘들지만 무엇하나 적극적이지 않다. 그가 적극적이었던 장면은 두 번 정도 봤던 것 같다. 와타나베가 미도리의 아버지 병문안을 갔을 때, 나는 와타나베가 그렇게 적극적으로 밝은 성격인지 처음 알았다. 처음 봤던 미도리의 아버지에게 오이를 먹이고, 산다는 것은 정말 좋은거라며 신나게 말했다. 두번째는 화가 난 미도리에게 용서를 비는 것이었다. 매번 미도리가 다가와주니 무심코 신경을 끄고 살았는데, 미도리가 그에 서운하다며 연락을 끊어버리니 몇 달 내내 쫓아다니며 용서를 빈다. (이제와서 얘기지만, 미도리는 처음 용서를 빌었을 때부터 이미 마음이 누그러졌다. 미도리가 원하는 사랑은 질릴 때까지 자신에게 충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냅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ㅋㅋ)

– 와타나베는 과거(나오코)에 묶여 있지만, 현재(미도리)로 나아가고 싶다. 그렇지도 여기에도 저기에도 어느 곳도 움직일 수 없다. 그는 방황 중이다.

– 미도리에 스며든 와타나베는 방황하느라 미도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녀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데 아주 오래걸렸다. 와타나베는 친구를 잃은 상처를 지니고 살아가는 인물인데, 친구가 점점 잊혀져 가는 것에 미안함을 느끼곤 한다. 꽤 진지하지만, 여느 스무살 스무한살 남자답게 자위와 섹스를 하곤 한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와타나베가 말도 안되게 섹스와 자위를 자주 해서 뭐 이딴 글이 다 있나 싶었다.

작가의 의도는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와타나베에게 섹스와 자위란,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수단일 뿐이었다. 처음 기즈키를 잃고, 첫 여자친구를 사겼을 때, 그녀와 섹스를 하다 현타가 와 그녀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나가사와 선배를 따라 헌팅하면서 여자들이랑 섹스를 할 때, 공허한 자신을 채우기 위해 했을 뿐이다. 그러다 나오코와 첫 섹스를 했을 때, 그는 나오코와 함께 서로의 공허함을 같이 위로하고자 시작했던 것 같은데, 끝이 좋지 않았다.

이후, 나오코가 와타나베를 위해 손으로 해주었는데, 와타나베는 이 기억으로만 의존해서 자위를 해나갔다. 그런데, 와타나베는 미도리를 상상하면서 자위를 하는 것은 너무 힘들었고, 미도리와는 이 작품 내내 한 번도 사랑을 나누지 않았다. 심지어… 나오코의 정신적 지주였던 레이코와도 마지막에 섹스를 했는데 말이다.(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어이없었던 부분) 미도리와 한 번도 섹스를 하지 않았던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와타나베는 미도리와 섹스를 할 기회는 많았지만, 정말 완전히 준비가 되었을 때 그녀를 받아들이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미도리에게 전화를 걸어, 너와 꼭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아. 꼭 해야 할 말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 이 세상에서 너 말고 내가 바라는 건 아무것도 없어. 너를 만나 이야기하고 싶어. 모든 것을 너와 둘이서 처음부터 시작하고 싶어, 하고 말했다.

미도리는 오래도록 수화기 저편에서 침묵을 지켰다. 마치 온 세상의 가느다란 빗줄기가 온 세상의 잔디밭 위에 내리는 듯한 그런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그동안 창에 이마를 대고 눈을 감았다. 이윽고 미도리가 입을 열었다. “너, 지금 어디야?” 그녀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지?

나는 수화기를 든 채 고개를 들고 공중전화 부스 주변을 휙 둘러보았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지? 그러나 거기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도대체 여기는 어디지? 내 눈에 비치는 것은 어디인지 모를 곳에 향해 그저 걸어가는 무수한 사람들의 모습뿐이었다. 나는 어느 곳도 아닌 장소의 한가운데에서 애타게 미도리를 불렀다.

– 그래서 서른 일곱살의 와타나베에게 묻고 싶다. 미도리와 행복하니? 아니면 행복했니?

# 나오코

– 나오코와 와타나베는 친구의 빈자리를 서로 위로하기 위해, 혹은 스스로 생을 마감한 친구를 붙잡지 못했던 상실감을 채우기 위해 그들 서로가 사랑했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 도입부에 나오코가 우물 이야기를 해줄 때, 끝으로 와타나베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녀가 왜 나에게 “나를 잊지 마.”라고 말했는지, 지금은 그 이유를 안다. 물론 나오코는 알았다. 내 속에서 그녀에 대한 기억이 언젠가는 희미해져 가리라는 것을. 그랬기에 그녀는 나에게 호소해야만 했다. “언제까지고 나를 잊지 마. 내가 여기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줘.”하고.

그런 생각을 하면 나는 견딜 수 없이 슬프다. 왜냐하면, 나오코는 나를 사랑하지조차 않았던 것이다.

나오코는 곧 떠날 사람처럼 자기를 잊지 말라고 늘 신신당부했다. 나오코는 자살한 친언니와 전남자친구를 먼저 보냈다. 현재 ‘자신’과 ‘떠나보냈던 그 시점의 그들’이 멀어지고 잊혀지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던 것일까?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고 기억하고 싶은데, 나는 자꾸만 무뎌지는 것이 힘들었던 것 같다.

– 나오코는 왜 젖지 않는다고 숱하게 말하는가? 나는 그녀가 기즈키와 사랑을 나누려 시도했지만 늘 실패했다고 했을 때, 찐사랑은 와타나베였던가? 이런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와타나베와 처음으로 섹스를 했을 때, 그녀는 처음으로 젖었다고 했다. 이후로는 쭉 메말라 있었다. 왜?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은 그녀는 언니의 자살 이후, 상실감을 기즈키를 통해 채우려고 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기즈키를 통해서 채우려고 할 때마다 언니가 점점 잊혀져 가고, 자신이 일상을 되찾게 됨에 죄책감을 느껴 제대로 무언가를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나오코도 또한 자기연민에 빠져 다른 사람을 통해 채우려 했지만 그마저도 힘이 겨워 생을 마감한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이런 힘든 나오코에게 와타나베는 똥을 투척했다. 너 처음이니? 왜 기즈키를 하지 않았니? 이러니 나오코가 요양원 안 가고 배겨?)

– 와타나베가 미도리를 사랑하게 된 것 같고, 그녀와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다는 편지를 레이코에게 썼는데, 그 편지를 보고 자신에게 남은 사람이 없었다고 생각하고 자살한 게 아닐까?

# 미도리

– 이 책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인물이다. 모든 여자들이 긴 머리를 하고, 얌전한 여자로 보이고 싶을 때, 그녀는 속옷이 보일랑 말랑하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칼단발을 했다. 미도리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싶은지 알고 있다.

– 자살과 죽음이 난무한 이 책에서 미도리가 죽지 않아 이것만으로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렇지만 그녀의 부모님은 뇌종양으로 돌아가셨고, 그녀는 가난한 집에서 사랑받아보지 못한 채 커왔다. 어머니는 그녀 어릴 적부터 일찍이 아파서 모든 가족이 어머니에게 관심이 쏠려 있었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는 아버지가 뇌종양에 걸려 미도리와 미도리의 언니가 돌아가며 병간호를 해주었다. 그녀는 어딘가에 위로받고 싶었을 뿐이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까딱했다. “충분하지 않아와 아주 부족해의 중간쯤. 늘 목이 말랐어. 한 번이라도 좋으니 듬뿍 사랑받고 싶었어. 이제 됐어, 배가 터질 것 같아, 정말 잘 먹었어, 할 정도로. 한 번이라도 좋아, 단 한 번만. 그렇지만 그 사람들은 단 한 번도 나한테 그런 사랑을 주지 않았어. 어리광을 부리면 밀쳐 버리고, 돈이 많이 든다고 불평만 하고, 늘 그런 식이었거든. 그래서 난 생각했어. 나를 일 년 내내 100퍼센트 사랑해 줄 사람을 찾아내서 손에 넣고야 말겠다고. 초등학교 5학년인지 6학년인지 그때 그런 결심을 한 거야.”

“와, 대단하네.” 난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래서 성과는 있었어?”

“참 어려운 일이야.” 말을 하고 미도리는 연기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겻다. “아마도 너무 오래 기다리다 보니, 엄청나게 완벽한 걸 바라게 된 것 같아. 그래서 어려워.”

“완벽한 사랑을?”

“그게 아냐. 아무리 나라도 그 정도를 바라진 않아. 내가 바라는 건 그냥 투정을 마음껏 부리는 거야. 완벽한 투정. 이를테면 지금 내가 너한테 딸기 쇼트케이크를 먹고 싶다고 해, 그러면 넌 모든 걸 내팽개치고 사러 달려가는 거야. 그리고 헉헉 숨을 헐떡이며 돌아와 ‘자, 미도리, 딸기 쇼트케이크.’하고 내밀어. 그러면 내가 ‘흥, 이제 이딴 건 먹고 싶지도 않아.’라며 그것을 창밖으로 집어 던져 버려. 내가 바라는 건 바로 그런 거야.”

이 부분은 나에게 있어서 뭉클하고, 공감이 갔던 장면이었다. 미도리는 와타나베에게 적극적으로 고백한 것이다. 난 널 놓치지 않을거고, 너가 나를 이렇게 사랑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 미도리는 와타나베에게 야한 이야기를 엄~~~~~청 많이 한다. 그녀가 야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왜 저러나 싶었다. 아무래도 당시 현모양처같은 여자들과 달리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말하는 당당한 여성을 표현하고 싶었던걸까? 무라카미상.. 맞나요? 미도리에게 감정을 이입해보자면, 와타나베에게 이렇게 야한 얘기를 해서라도 자신의 껍데기라도 차지했으면 좋겠다는 것을 어필하는 것 같다. 항상 와타나베가 자신을 겁탈해주길 바라듯이 이야기하지만, 와타나베를 믿는다는 듯이 넌 그러지 않을걸 믿는다고 말한다. 온전히 자신을 사랑해주었으면 좋겠지만, 와타나베의 정신머리는 딴 세상에 있기에 이렇게라도 자신을 어필하고 싶었던 것 같다.

# 슬픔을 위로하는 법

노르웨이의 숲은 한국 제목 그대로 상실한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 같다. 와타나베는 기즈키와 나오코를 상실했다. 나오코는 친언니와 기즈키를 상실했다. 미도리는 부모님을 상실했다. 레이코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상실했다. 하쓰미는 나가사와를 상실했다. 누군가를 상실한 아픔과 슬픔은 똑같이 겪어도 겪어도 무뎌지지 않고 똑같이 아프다(혹은 더 아플 수도 있다). 대신 우리들에게 주어진 망각이라는 선물이 있기에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지겠지.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미도리가 부디 사랑을 듬뿍 받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른 일곱살의 와타나베는 행복하지? 독일로 가는 비행기가 나가사와를 만나러 가는 비행이니? 하여튼 모두들 슬픔과 아픔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갔으면 좋겠어.

무라카미 하루키의 난무한 섹스 이야기가 질릴만도 하였는데, 와타나베에게 섹스란 공허함을 풀고, 상실감을 지우기 위한 수단에 관한 표현이라면…. 일단 알겠다. 내가 해석을 겁나게 잘 해줬지 뭐.. 무라카미 하루키의 다음 작품을 한 번 더 읽어보고 이 사람의 세계관을 한 번 더 고민해보기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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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앓고, 알아가던 스무살의 그때… (상실의 시대)

17살. 나, ‘와타나베'(마츠야마 켄이치)는 절친 ‘기즈키’, 그의 연인 ‘나오코'(키쿠치 린코)와 함께 항상 셋이 어울렸다. ‘기즈키’가 홀연히 죽음을 택하고 남겨진 나는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19살. 도쿄의 대학생이 된 나를 ‘나오코’가 찾아온다. 매주 함께 산책을 하면서 서로 가까워지게 되고, ‘나오코’의 스무 살 생일날 우린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 후로 한동안 연락이 없던 ‘나오코’에게 현재 요양원에 있다는 편지를 받게 되고, 그 곳을 찾아가면서 그녀에 대한 내 사랑이 조금씩 확고해져 가는 것만 같다.

20살. 같은 대학에 다니는 ‘미도리'(미즈하라 키코)가 내 삶에 들어온다. 톡톡 튀는 성격의 그녀에게서 ‘나오코’와는 다른 매력이 느껴진다. ‘나오코’의 편지가 점점 뜸해지던 어느 날, ‘나오코’의 병세가 더욱 심해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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